[남기고] 뇌 속을 손금 보듯 … 17. PET 우열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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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워싱턴대학 터 포고시안 교수팀이 개발한 육각형 PET.

 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원형 PET는 내 성을 따 ‘조스 링(Cho’s Ring) 또는 ‘조스 펫(Cho’s PET)’으로 불렸다. 내 개발품이 워싱턴대 터 포고시안 박사의 육각형에 비해 서너달 늦게 개발되었으나 아이디어가 우수한 것을 알아 차린 터 포고시안팀은 연일 공격을 계속했다. 각종 학회며 세미나에서 “원형 펫은 인체 스캔을 정밀하게 하기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며 공격했다.

 워싱턴대의 PET는 24개의 방사선 검출기 밖에 달지 않았지만 검출기를 CT와 같이 움직일 수가 있기 때문에 인체 영상을 아주 조밀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검출기를 움직이면 수학적으로 샘플링을 촘촘히 할 수 있기 때문에 해상도도 높아진다. 그러나 검출기를 움직이는 방식은 정밀도를 낮추는 역기능이 있다. 더구나 6각형이다 보니 촬영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터 포고시안은 펠프스 박사를 조교수로 데리고 있었던 당시 50대의 학자로서 학계에 입김이 강했다. 나는 우군이 거의 없는 미국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1976년 로스엔젤레스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컨퍼런스가 열렸다. 나와 터 포고시안 교수팀이 함께 참석했다. 거기서도 대격돌이 있었다. 터 포고시안 교수는 조스 펫이 형편없다고 몰아갔다. 조스 펫이 자신들이 개발한 것과는 방법이나 모양, 수학적 해법 등 모든 면에서 달랐던 것이 공격의 빌미를 덜 줬다.

 그 컨퍼런스에서의 논쟁은 책으로 묶여져 나왔다. 뇌과학연구소 도서관에는 누렇게 색이 변한 그 책이 보관되어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책자를 가끔씩 읽어 보면서 실소를 머금는다. 그렇게 그들이 좋다고 우기던 육각형 PET의 자취는 지금 대학 창고에나 남아 있을 뿐이다. 조스 펫은 지금 세계 표준형으로 자리 잡아 전 세계 병원과 기초과학연구소에서 가동되고 있다.

 터 포고시안 교수는 이미 고인이 됐다. 그와 함께 육각형 PET 개발에 참여했던 젊은 조교수였던 펠프스 교수는 UCLA에 재직하고 있다. 몇 년 전 국내 한 방송사가 그를 인터뷰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조스 PET이 살아 남아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한 때 학문적인 경쟁자이자 ‘적’이었지만 상대를 인정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조장희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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