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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모씨 경영권 회복 최대관심/국제그룹 해체과정과 향후전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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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최고위층 미움받아 「타살」”주장/주거래 은행측 “불가피한 조치”/주식반환 싸고 인수기업과 소송사태 날듯
지난 85년 전두환 정권시절 국제그룹 해제과정에서의 공권력 행사로 인한 재산권침해가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국제그룹이 원소유주인 양정모씨에게 다시 되돌려질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국제상사 등 국제계열 23개사는 1조7천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도처리돼 한일합섬과 동국제강,극동건설 등 모두 13개회사에 인수됐다. 당시 국내·외 경제난 속에서 피치못할 고육지책으로 취해진 정리작업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논란이 많았던 터에 이번 헌재결정이 나옴으로써 양씨의 명예회복은 물론 앞으로 진행될 주식반환소송 등 권리행사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계서열 7위였던 국제그룹의 해체에 대해 국제측은 그동안 『권력층의 미움을 산끝에 정치적으로 타살됐다』고 주장해 왔고 6공이 들어선뒤 88년 4월 국제상사 주식반환소송을 냈었다.
이와는 별도로 국제그룹 부회장이자 양씨의 사위인 김덕영 두양그룹회장도 제일은행을 상대로 신한투지금융 주식반환 소송을 내놓고 있다.
헌재의 결정문은 『85년 당시 김만제 재무부장관이 전 대통령에게 국제그룹의 전면해체와 더불어 경영권을 제3자에게 인수시키는 방안을 건의하고 전 대통령이 이를 최종결정,주거래은행이 재무부의 지시에 따라 해체를 발표한 것은 개인기업의 자유와 경영불간섭 원칙을 어긴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제그룹 해체에 대해서는 현재도 양론이 있지만 양씨측은 당시의 정치권력에 밉보였음직한 「사건」들을 타살의 정황증거로 열거하고 있다.
양씨는 부산상의회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85년의 2·12총선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아 부산지역의 선거결과가 좋지않았고 정치자금과 새마을성금 등 「준조세」의 납부에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양씨는 우선 83년 새마을성금 등을 거둘때 훨씬 규모가 작은 D사가 30억원을 냈는데 비해 3억원을 냈으며 84년에는 10억원을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내 「미운털」이 밝힌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또 84년 12월22일 비행장의 폭설로 청와대 만찬에 지각,「불경죄」를 지었으며 10대그룹중의 하나인 국제그룹을 공중분해 시킴으로써 일벌백계의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계열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특혜에 따른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그룹해체의 배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88년 12월 국회 5공비리 특위에서 알짜회사였던 연합철강을 인수한 동국제강의 장상태회장이 새세대 심장재단을 비롯핸 67억원의 성금을 낸것이 문제됐으나 명쾌한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재산을 평가하고 인수기업을 선정하는 과정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고 양씨측은 호소해왔다. 양씨측은 주력기업인 국제상사의 재산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주식매매 정지 당시 주당 1백60원에 거래되던 국제상사 주식을 1원으로 평가절하,인수자인 한일합섬에 특혜를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국제가 부도를 내기까지 급박한 상황에 몰리는 84년은 정부가 한해사이에 총통화 증가율을 14.7%에서 8.9%까지 떨어뜨리는 등 돈줄을 죄는 빡빡한 금융긴축이 몰아쳤던 때이고 국제 역시 신발·건설·무역 등 거의 모든 진출분야에서 악전고투,단자사의 상황이었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필선 전 제일은행장 등은 『국제측이 억울하다고 하나 부도를 내기 한달전부터 하루 수백억원의 어음교환이 돌아와 은행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국제의 부채비율이 8백%를 넘는 등 재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타살이냐,「자연사」냐 여부를 따지는 것보다도 물고 물리는 소송사태 등 앞으로 전개될 복잡다단한 파장이다.
국제상사 주식반환 소송은 91년말 원고인 양씨측이 패소를 했지만 2심 계류중이어서 헌재의 결정이 양씨측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이며 승소할 경우 국제상사 발행주식의 15.45%인 1천1백98만5천주(주당 액면가 5백원),액면가 합계금 59억9천2백만원을 되찾게 된다.
양씨측은 이 소속에서 이길 경우 나머지 회사를 찾기위한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따라 국제계열사를 인수한 기업의 맞소송 등 적지않은 파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식반환소송 등을 통해 주식의 상당수를 되돌려 받는다고 해도 양씨가 경영권을 완전회복하기는 쉽지 않은 상태다.
국제계열사를 인수한 기업들은 그동안 증자 등을 통해 기업규모를 키우는 한편 경영개선 노력을 기울인데다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기업이 많아 「8년간의 양육권」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상사의 경우 당시 자본금이 3백89억원이었지만 두차례의 증자로 지난해 자본금이 6백50억원으로 늘었고 동서증권은 극동건설이 인수할 85년 당시 자본금이 2백억원에 불과했으나 80년대 후반이후 증시활황에 힘입어 급성장,2천8백7억원으로 14배나 커졌다.
한편 김 회장이 낸 신한투자금융 소송은 경영권회복에 한걸음 더 다가간 상태다. 김 회장은 재력가인 부친 김종호씨와 함께 지난 88년 9월 제일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었으며 지난 90년 2월 1심에서 『당시 재무부 등 국가기관이 나서 주식을 제일은행으로 인도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은 강박으로 인해 공정성을 잃은 것이기 때문에 은행측은 주식인도 당시의 매입가인 80억원을 되돌려 받고 주식 1백30만주를 되돌려주라』는 판결을 받은바 있어 별다른 변수가 없는한 경영권을 되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번 헌재의 결정은 당시 어려운 내외 경제여건속에서 「공권력」으로 이뤄져온 종전의 부실기업정리 방식에 쐐기를 박는 것은 물론 앞으로 기업정리를 할때 헌재의 결정문에 나타났듯이 「자유민주적 법질서」에 따라 처리하는 관행을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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