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록없는 역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일기까지야 못되지만 그날 그날의 주요한 일을 메모형식으로나마 적는 사람은 많다. 기억에 도움이 되고 뒷날 반성의 자료도 되기 때문이다. 사춘기시절의 일기를 우연히 뒤적거리다가 혼자서 얼굴 붉히면서도 그 나이의 자식의 엉뚱한 행동을 이해하고 타이르는데 도움이 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가계부도 일종의 일기다. 각종 기업체의 업무서류나 관공서의 공문서도 기업과 정부의 일기나 다름없다. 훗날 민간경제사의 자료가 되고 국가역사의 생생한 물증이 된다. 그래서 어느 나라나 문서처리법(미국)이나 데이타보호법(영국·독일) 등을 두어 정부의 기록문서에 대한 작성·보관·폐기처분 등을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관리대상을 「도서관에 있는 도서를 제외한 모든 서적·서류·지도·사진」까지를 포함해 「연방정부기관이 작성 혹은 수수한 것」으로 광범위하게 정의하고 있다. 아무리 비장했던 문서라도 일정한 법적 보존기간이 지나면 일반에 공개해 활용토록 한디. 비공개기간에도 정보공개법의 요건에 따라 선별과 절차를 엄격히 해 공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지난 63년 「공문서 보관 보존규정」이 대통령령으로 제정됐고,84년에 전면 개정한 「정부공문서규정」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가치가 있는 기록들이 온전히 보관돼 있는지에 국민들의 의구심이 크다. 최근에 밝혀진 것만 해도 5·16,12·12,5·17,6·29같은 역사적 격변기의 중요한 사건들에 관한 문서들이 정부기록보존소에 거의 보관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권력자의 자의에 의해 자신들의 떳떳지못한 기록들을 없애버리는 전횡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역사기록에 대한 인식은 과거 왕조시대에도 못미치는 상태다. 그땐 왕도 사초를 볼 수 없었고,역사를 왜곡하려는 권력에 맞서 목숨을 내걸고 저항하던 사관도 있었다.
총무처 정부기록 보관소가 최근 청와대 근처에 기록물 상설전시장을 마련해 많은 역사자료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한다. 이미 확보된 기록들도 중요한 것들이겠지만 아직도 기록되지 않는 사료들,즉 지금 살아 있는 현대사 주역들의 기억 속에 비장돼 있는 역사적 비화들도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