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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항쟁의 반세기 『관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8·15해방이 연합군의 전리품으로 치부돼 퇴색된 의병·독립군·광복군·항일파르티잔들의 피어린 항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는 의병장 이강년의 기병격문에도 드러나듯 20세기 전반부는 이 땅의 수많은 의로운 사람들이 일어난 항쟁의 역사였습니다. 결코 패배와 굴종의 일제압제의 역사였다고 흘려버릴 수만은 없습니다.』
『나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사료 속으로, 역사의 현장으로 찾아가 독립전쟁의 영웅들과 수많은 이름 없는 소졸들을 만났습니다. 퇴색해버린 그들의 진실을 복원, 외세에 실종된 민족정기의 본류와 자긍을 회복시키고 싶습니다.』
중견작가 이원규씨(46)가 대하소설『거룩한 전쟁』1부『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 3권을 최근 신구 미디어에서 펴냈다. 전12권 예정의 대하『거룩한 전쟁』은 4부로 나뉘어 1895년부터 한일합병까지의 국내의병항쟁, 한일합병후 북간도·연해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군투쟁, 중국 동북지역과 화북연안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파르티잔 투쟁 등 항일 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 반세기를 관통하게 된다.
1부『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는 무관출신 이강년이 1895년 고향 문경에서 군사를 일으켜 의병대가 패퇴해 간도로 들어가기까지를 축으로 국내 의병활동과 간도 유민들의 개척·투쟁사를 다루고 있다. 소백산 포수들과 손잡고 기병해 고모산성전투 등 수차례의 전투를 펼치다 제천 유인석의 호서 의병대와 합류해 연합투쟁을 하는 장면, 홍범도·신돌석 등 평민 의병장들이 뚜렷이 떠오르는 전투장면, 13도 연합의병의 서울공격과 실패·일본수비대의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의병들이 소백산맥·장백산맥을 넘어 간도·연해주로 들어가 투쟁을 재기하는 장면 등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이씨는 소설의 현실성을 높이려 소백산을 중심으로 한 호서의병대의 격전지를 비롯, 남한 각지의 의병항쟁 현장을 답사했다. 뿐만 아니라 두차례 중국을 방문, 상해·북경·천진 등 대도시와 북간도지역을 집중적으로 답사했다. 의병항쟁을 다룬 문헌 섭렵은 물론 일본까지 건너가 당시 의병 토벌에 쓴 일본군 작전지도 등 1900년대 지도 1백여본도 입수해 집필에 참고했다.
이씨는 또 공수 특전단에서 비정규전에 대한 전술교육을 받고 백마사단장 거리 정찰대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경험이 유격전·산악전이 대부분인 의병전투 묘사에 큰 도움이 됐다고 밝힌다.
이씨는 특히 역사상 인물과 익명의 민중 등 총 2백여명의 등장 인물들이 출신지역 제각각의 사투리를 쓰게 하며 각 지역의 풍속·민요 등을 서술·삽입하는 방법을 통해 한 시대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 사이의 이율 배반이 역사소설입니다. 역사는 기록이어서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설은 독자 앞에서 당시를 생생히 말해야 합니다. 말하지 않는 역사 속으로 작가정 신이 라는 그물을 들고 뛰어들어 펄펄 살아 있는 그 시대와 인물을 이 시대 독자 앞에 건져 올리는 것입니다. 사관과 작가정신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유지될 때만이 역사소설은 역사의 보조물이나 허황된 옛날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84년『월간문학』을 통해 문단에 나와 장편『훈장과 굴레』『황해』등으로 문학성과 역사소설가로서의 저력을 인정받은 이씨는 2년전 이 작품의 집필을 위해 18년간 근무하던 교사직을 그만뒀다. 2부를 집필중인 이씨는 대하『거대한 전쟁』을 3년내 완간하겠다고 벼르고있다.<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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