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언타임」은 버릇인가(속/자,이제는…: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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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식행사 30분쯤 늦추기는 예사/늦게와 “그럴줄 알고 천천히 왔지”
토요일 오후 1시. 서울 강남에서도 제법 이름있다는 예식장에서 결혼식이 올려지기로 약속된 시간이다. 이미 사회자의 안내방송에 따라 양가 부모들은 지정된 자리에 앉아 다소곳이 의식절차를 기다려야 할 시간임에도 시계 한번 들여다 보지 않고 문간에서 하객들과 담소를 즐기고 있다.
도심의 토요일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시간이다. 일가친척의 성스러운 결혼식을 축하해주기 위해 주말의 「살인적인 교통지옥」을 감안해 일찌감치 예식장에 도착한 하객들은 답답하다. 대충 30분 정도면 예식이 끝날 것이고 다소 늦은 점심을 피로연장에서 때운뒤 각자 다음 스케줄로 옮겨가게 돼있다. 그러나 도대체 누구하나 서두르는 사람이 없다.
토요일 오후에도 근무를 벗어날 수 없어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하객 하나가 조바심 끝에 축의금 접수창구에 『왜 식이 늦어지느냐』고 묻자 대답이 걸작이었다. 『염려마십시오. 이 예식장은 워낙 비싼 곳이어서 하루 한탕씩만 치르기 때문에 아무때나 시작해도 됩니다.』
어디 비단 예식장뿐이겠는가. 크고 작은 연주회·세미나에서부터 사사로운 친목모임까지 어느 하나 제 시간에 시작되는 꼴을 보기 어렵다. 따라서 약속된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사람들은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보상받기 어려운 큰 손해를 보는 셈이고,우리 사회에서의 「약속시간」은 의미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내 그럴줄 알고 천천히 왔지.』
아예 30분 정도 늦게 잡아 도착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그런 망국적인 풍토가 외국에서나 외국인들과의 약속에서 씻을 수 없는 망신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1천석의 연주홀에 1백명만이 정시에 도착했다 하더라도 문을 잠그고 연주를 시작해야 한다. 관객이 얼마나 도착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몇시에 시작하기로 약속돼 있었느냐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배유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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