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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티' 전국 번호판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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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너희가 디자인을 아느냐-."

디자인을 무시한 채 전국 자동차 번호판을 만든 공무원들이 결국 네티즌의 호통에 손을 들었다.

건교부는 "촌스럽기 짝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새 디자인으로 바꾸기로 12일 약속했다. 연초부터 후끈 달아올랐던 번호판 논쟁에서 네티즌과 디자인이 승리한 것이다.

그러나 올 들어 번호판을 새로 교체한 수만명이 다시 바꿔야 하는 등 큰 불편을 겪게 됐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건교부는 지난 1일부터 지역표시를 없애고 숫자를 크게 키운 전국 번호판제를 시행했다.

이 번호판 디자인에 대해 네티즌들은 하루 수십여건씩 건교부 홈페이지에 비판 여론을 게시했다. 디자인의 기본원리조차 무시했다는 지적이 대부분이었다.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건교부는 결국 국민공모를 거쳐 새로운 디자인의 번호판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건교부는 오는 15~31일 건교부 자동차민원 전용 홈페이지(www.car.go.kr)에 새로운 번호판 디자인을 공모할 계획이다. 디자인은 전문가 검토를 거쳐 2월 중순까지 확정, 6월 말부터 또다시 번호판이 개편된다.

전국 자동차 번호판 제도는 1999년부터 계획해 2002년 10월에 발표, 지난 1일부터 시행한 정책이다. 시행 12일 만에 재검토에 들어간 것이다.

검토할 기간이 길었던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건교부는 전문가에게 디자인에 대해 자문하거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하지도 않았다. 강영일 육상교통국장은 "새 번호판이 30년간 유지돼 온 번호판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 여론 수렴을 소홀히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전국 1백96개 자동차 번호판 제작업소에서 새로운 번호판 틀을 만드느라 총 10억여원이 들었다. 또 10일까지 신규 번호판을 신청한 14만명가량의 차주가 부담하는 비용은 평균 1만2천원씩 총 17억여원이다. 게다가 6월 말 이전에 새로 차를 사거나 다른 시.도로 이사하는 사람은 '문제의 번호판'을 달아야 해 이중의 낭비가 우려된다. 그런데도 건교부는 아직까지 졸속 행정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분위기가 아니다.

서울대 디자인학부 백명진 교수는 식별성을 중시했다는 건교부의 해명에 대해 "디자인과 식별력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며 "1~2㎜ 차이도 전체적 조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잘 보이게 하려고 무조건 글자를 키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번호판을 공모한다는 발표가 나자 건교부 홈페이지엔 시민들의 반응이 속속 올라왔다. 정해진씨는 "애들 장난도 아니고 국민 세금을 그렇게 대충 써도 되는 거냐"고 질타했다.

"자동차 번호판은 단순히 번호 인식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동차와 함께 어우러진 디자인의 한 부분이다. 새해부터 국가는 국민의 수준을 무시한 새해 선물을 줬다"(아이디 BMW5)는 논평도 있었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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