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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머리로 바꿔라/「중국 유한공사」 대장정(개방 중국의 오늘: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대기업 30∼40대 경영자 많아/“노력=돈” 「차이니즈드림」 실현
「개방개도국」이라고 할 수 있는 현 중국의 나이를 얼마로 보면 될까.
기원전부터 문명을 일으켰던 중국의 역사는 매우 길지만 역사상 처음 본격적인 시장경제로의 길로 접어든 지금의 중국은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중국에서 기업상담을 하다 보면 총경리(사장)나 부총경리(부사장)의 명함을 내미는 30∼40대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를 흔히 만날수 있다.
그들의 여름복장은 대개 넥타이를 매지 않은 셔츠 차림이고 깔끔하게 면도한 사람도 드물며 장발인 경우까지 더러 있다.
이들이 바로 오늘의 개방중국을 앞에서 이끌어 가는 「중국신한공사」의 의사결정자들이고,노력한 만큼 돈을 번다는 사고에 철저한 「차이니즈 드림」의 실현자들이다.
개중에는 『그저 작은 기업하나 하며 편안하게 살지 왜 사업을 크게 벌려 사생활도 없이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랑반 후회반처럼 하는 57년생 「무서운 아이」도 있는게 마치 30대 장관이 나오고 「앙팡 테리블」이라는 말이 유행하며 엉성하게 기회·혼란이 뒤섞이던 20∼30년 전의 한국을 보는 것과 같다.
올해 34세인 중국 원동국제무역총공사 부총경리 황국강씨는 지금의 회사로 자리를 옮긴지 5년만에 부총경리 자리에 오른 맹렬 간부다.
약 3백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그의 회사는 지난해 20억원(약 2천9백억원) 어치의 상품을 수입해 팔았고 비록 적은 규모지만 2백10만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황씨와 함께 그의 회사를 방문해 3명의 부총경리중 한 사람인 50대 중반의 방국전 고급경제사(Senioreconomist)와 같이 나눈 그들과의 다음과 같은 대화는 한번쯤 돌이켜 볼만 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와는 교역을 잘 하는 데 왜 가장 가까운 한국과의 교역이나 투자는 활발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지난해 3백대의 일본 세단,2백대의 독일 차를 수입했고 한국으로부터는 약간의 통신 장비와 직물을 수입했을 뿐이다. 한국산 직물은 질기고 색상이 좋아 인기였다. 한국과의 교역을 늘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오늘 아침에 에어컨디셔너 2천대를 살 계획을 했다. 한국의 모 전자회사가 평판이 좋다고 들었는데 혹시 그 회사를 알고 있는가.』
실제로 그들이 말한 한국회사는 북경에 사무소를 내고 있는 국내의 유명 전자회사라 그 자리에서 바로 전화를 연결시켜 줄 수 있었다.
그 뒤의 상담이 어떻게 진정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정도 규모의 중국 회사와 한국의 간판급 전자회사의 북경사무소가 서로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북경의 한 유명 대학을 졸업한 한 경제학 석사며 「총재」의 명함을 사용하는 57년생 젊은 사업가 이씨의 스토리는 이름과 회사를 밝힐 수 없는 「차이니즈 드림」의 한 성공담이라 할 만하다.
그는 지난 88년 친구와 함께 14만원을 출자해 회사를 세운 후 5년이 지난 지금 자본규모 1억여원의 모회사와 몇개의 자회사를 합쳐 모두 자본규모 5억여원의 기업군을 거느리고 있는 「무서운 아이」다.
지금까지 그가 손을 댄 것은 모두 주식·부동산 뿐이었다.
『우리는 법을 어기지 않는다. 다만 충분히 활용할 뿐이다.』
『그저 조그마한 기업 하나 굴리며 편히 지내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든다.
『주식과 부동산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몇년 지나서는 제조업으로 돌릴 예정이다.』
『외국에 현지 법인을 세운뒤 다시 중국에 투자해 자본을 보호하는 방법도 생각중이다.』
이같은 사고로 무장한 거대한 「젊은 중국」이 바로 우리 옆에서 지금 빠른 속도로 깨나고 있는 것이다.<북경=김수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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