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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장각과 현대과학/장수영(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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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현재 서울대학교 내에 있는 규장각은 정조대왕이 즉위한 1776년에 왕립도서관,학술 및 정책 연구기관으로 설립되었고 초기에는 창덕궁 주합루에 있었다. 일제때에는 조선총독부가 관할하다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서울대학교 도서관 소속으로 되어 있다가 1992년 23월에 도서관에서 독립되어 서울대학교 규장각이 되었다.
○묻혀있는 역사의 보고
규장각에는 중국서적 6만7천7백86책을 포함하여 18만권 이상의 귀중한 서적과 5만여장의 고문서,1만8천여장의 책판,8천여롤의 마이크로필름 등이 있다. 이 중에는 방종현·이병기·이상백·김철준교수 등이 기증한 책도 있고 수천장의 고지도도 있다고 한다. 제목없는 책들이 많아 아직 목록조차 완전히 되어 있지 않다고 하니 이 많은 책들을 제대로 연구하면 우리 역사를 새로 써야 될지 모르겠다.
대동여지도보다 훨씬 전에 나온 우리나라 지도를 몇개 보았는데 당시의 지도는 일종의 산수화였다. 백두산 천지를 당시에는 대택이라고 불렀으며 천지 북쪽에 있는 토문강도 그려져있다. 평양은 기성,또는 유경이라고 되어있어 현재 공사하다가 중단한 호텔 이름이 왜 유경호텔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영변의 지도를 보면 왜 핵시설이 거기에 들어가야 하는지를 금세 알 수 있다. 영변은 산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분지로서 철옹성으로 보인다.
정조대왕이 비명간 아버지 사도세자릉에 행차하는 그림은 길이가 20m나 되며 일행이 무려 2천여명이나 된다. 조선시대 문화는 별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던 필자의 개념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되었다. 한강을 건널 때에는 배다리를 놓고 2천여명이 그대로 건너가는 그림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같이 귀중한 지도들이 지금 한해가 다르게 못쓰게 되어간다. 지도가 워낙 커서 모두 접어 놓았는데 접힌 곳이 파손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이 지도들을 새로 그리는 것이겠으나 수십년이 걸려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여기에 컴퓨터 기술을 이용하여야 한다.
최신 그래픽 워크스테이션에다 스캐너를 써서 지도를 모두 저장시키고 필요할 때에는 언제든지 컬러프린터로 찍어내면 된다. 물론 소프트웨어가 필요하지만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와 같은 컴퓨터시스팀을 구입하려면 최소한 2억원은 필요하며 실제로 지도를 컴퓨터에 입력할 인원이 최소 2명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규장각의 예산으로는 이와 같은 컴퓨터시스팀 하나도 구입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은 예산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예산부족해 보존 소홀
규장각은 서울대학교에 속하지만 서울대학교 예산이 서울의 한개 구청예산의 절반 밖에 안되므로 예산 지원은 기대할 수 없다. 교육부는 예산의 대부분을 초·중·고등학교 교육에 사용하고 있으므로 1백40여개 대학에 주는 예산이 일본 동경대학 하나의 연간 예산보다도 적다. 필자의 상식으로는 이와 같은 사업은 문화체육부가 지원해야 된다고 보나 소관이 달라 어렵다고 할 것이다.
돈 많은 분들이 유산을 자식들이나 변호사들에게 맡기지 말고 규장각 같은 문화기관에 맡기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외국의 대학들에서는 현관 홀에 기증자들의 이름을 새겨놓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도 조속히 그러한 전통이 수립되어야 겠다. 여기에서 생각나는 것은 제3공화국 시절에 철강사업으로 돈을 번 장모씨가 불교 중흥에 써달라고 박정희대통령에게 거액을 맡기고 작고한 일이다. 그러나 그 돈정말로 불교 중흥에 사용되었는지 궁금하다.
규장각에 수십억원의 기금만 생겨도 많은 사학도들을 고용해 이 많은 서적들의 영인본을 만들어 전국 역사학도들의 석사·박사논문 쓰는 자료로 사용한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를 새로 써야 될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질 것이다. 고지도를 검퓨터에 보관하는 일도 공과대학 교수들에게 연구 용역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금년도 교육부의 연구예산은 2백70억원이다. 이중에서 매년 10억원을 규장각 사업에 배당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온고지신 되새겨 볼때
우리 민족문화 유산이 규장각에 쌓여있는데 이것을 빨리 활용해 연구하지 못하고 못쓰게 된 자료를 후세에 넘겨준다는 것은 우리 세대의 큰 죄악이다. 선진국은 2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가 넘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문민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돌려 우리나라를 문화적으로 세계의 존경을 받는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정도의 사업은 정부의 관심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과학도들도 이와같은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우리 문화의 보전에 일조해야 될 것이며,일반 국민들도 조금씩이라도 성금을 내 문화국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필자약력 ▲53세 ▲서울대 공대 전기공학과졸 ▲미 메릴랜드대 공학박사 ▲뉴욕주립대 부교수 ▲MITRE코퍼레이션 책임연구원 ▲포항공대교수 ▲동 부학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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