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사 상급자도 알았다”/김형두씨 증언/정치테러단 운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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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경찰조사때 「이 부장」·상관 한밤 면회/정보사 개입사실 알고 은폐의혹/경찰도 배후 누설여부 집중추궁
정보사의 민간인 정치테러단 운영은 실무책임자인 「이 부장」의 상급자도 사실을 알고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또 정보사 신민당 부총재의 테러사건은 경찰도 당초부터 배후가 정보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정보사·경찰이 사전 묵계하에 진실을 은폐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을 사고있다.
이같은 사실은 양 의원 테러사건을 저지른뒤 신민당에서 허위 양심선언을 하고 노량진경찰서에 넘겨져 조사를 받았던 당시 행동대원 김형두씨(41)의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김씨는 86년 4월29일 양 부총재를 테러한뒤 다음달 12일 신민당을 찾아가 배후를 밝히지 않은채 『혈액원에서 만난 신사복차림의 사람들의 지시로 테러했다』고 허위 양심선언(15일)을 한뒤 서울 노량진경찰서로 신병이 넘겨졌었다.
당시 신민당은 『양심선언을 했으므로 고문하거나 구속시키지 말라』고 요구한뒤 당 간부들이 김씨를 데리고 노량진경찰서로 가 김규수서장에게 신병을 넘겼다.
김씨는 당시 조사상황에 대해 『파출소·여관 2∼3군데를 끌려다니며 조사를 받았으며 형사들은 범행내용보다 신민당에서 배후에 대해 양심선언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캐물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노량진경찰서 형사들뿐 아니라 치안본부(현 경찰청)에서도 형사들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며 이들도 범행자체가 아니라 양 부총재에게 배후를 밝혔는지를 자꾸 물어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관에서 조사를 마친뒤 노량진경찰서로 넘겨졌으며 이때 김병준 당시 수사과장이 『이××부장을 알고있지 않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김씨는 『조사과정에서는 한번도 이 부장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없었다』며 『수사과장이 이 부장의 이름을 먼저 묻는 것을 보고 「경찰이 배후를 알고 있으며 사전에 정보사와 연락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경찰서 보호실에서 하룻밤을 지낸뒤 다음날 새벽 2시쯤 이 부장과 이 부장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찾아왔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형사들이 「높은 사람이 면회를 왔다」며 깨워 경찰서 지하실로 안내돼 가보니 이 부장과 상관으로 보이는 스포츠머리에 키가 작고 다부진 체격의 사람이 와 있었다』며 『이 부장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고 최소한 장성급이며 정보사에서 공작을 담당하는 고위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 부장은 상관의 지시로 형사들을 모두 나가게 했으며 김씨와는 30여분간 대화를 했다.
이 부장 등은 김씨에게 경찰에서 조사받은대로 신민당에서는 배후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지 중점적으로 물었고 김씨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는 것.
이 부장의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은 『김군이 의리를 지켰으니 이 부장이 책임지고 보살펴주라』고 말했고 이 부장은 『아침에 신민당에서 널 데리러 오면 양심선언도 마쳤으니 고향으로 가겠다고 말하고 청량리 M호텔 앞으로 나와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씨가 다음날 신민당을 나와 지시를 받은대로 청량리 약속장소로 나가자 이 부장은 「의리를 지켜준 대가」로 40여만원 정도를 줬고 다음날 김씨를 속초로 데리고 가 오징어배 어부로 취직시켰다.
한편 당시 노량진경찰서장 김규수씨(정년퇴직)는 『김형두라는 사람이 양 의원 테러사건으로 경찰서에 왔던 사실은 있지만 정보사에서 장성·여관급 장교들이 찾아와 면회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당시 데모 때문에 연일 정신이 없었고 담당과장은 수사과장이 알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병준 당시 수사과장(현 광명서장)은 『정보사 이 부장을 알지 못하며 당시 정보사 장교들이 김씨를 면회했다는 보고도 받지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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