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과 평화” 기대포기/폭격이후의 이라크 정책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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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랍권 동정론속 미 외교 흠집 주력/대규모 군중집회등 선동 아직없어
이라크는 지난 27일 미국의 바그다드 미사일 폭격을 계기로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 당시의 대미 대결노선으로 복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빌 클린턴 미 대통령정권 출범이래 미련스러울 정도로 매달려온 대미관계 개선 기대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클린턴이 부시 당시 대통령을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부시에 대한 나의 승리」라며 기뻐했다. 지금까지도 자신의 입으로 클린턴에 대한 비난 발언만은 삼가하고 있을 정도로 대미 관계개선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틈만 나면 부시 전 대통령을 범죄자로 비난하며 처단을 맹세해왔던 자세와는 확연히 다른 입장이었다.
이라크가 이처럼 대미관계 개선에 미련을 갖게된 근거는 대체로 2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직후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 폐기 등 걸프전 휴전협정을 1백% 이행하면 국제제재를 해제할 수 있다』고 발언,부시정권이 집착했던 후세인 축출문제를 거둬들일 뜻을 비춘 점이다. 또 지난해말이래 미국에서 이란 위협론이 강력하게 대두된 것도 이라크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이란­이라크전 때처럼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와 가까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근거는 하나하나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클린턴 정권은 『과거처럼 한 쪽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한 쪽을 편들지 않겠다』고 밝혔다. 게다가 지난 4월에는 클린턴 정권이 이라크 반정부 연합조직인 이라크 국민회의(INC) 대표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후세인정권 타도를 공공연히 지지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4월20일께 이후 쿠웨이트·미국으로부터 이라크의 「부시암살 미수설」이 제기됐다. 팬암기 폭파용의자 인도문제에 대한 미국의 대리비아 태도로 미뤄볼 때 부시암살 미수설은 직위를 떠나 미­이라크간 본격적인 긴장국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이미 예측했었다.
곧이어 이라크 미사일 시험기지 감시용 카메라설치 시도에 이의를 제기,사찰단이 지난 4일부터 바그다드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또 지난 18,25일 안보리와 미국이 각각 이라크에 대해 『카메라 설치를 계속 거부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데 이어 27일 미국이 부시암살 음모설을 명분으로 바그다드를 폭격했다. 이에따라 이라크는 클린턴정권과의 관계개선은 물거품이 된 것으로 간주한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정보부 책임자가 28일 클린턴정권 출범이래 이라크 당국자로는 처음으로 후세인에게 보내는 메시지에서 대미 보복을 선언한데 이어 이라크 언론들도 『유엔사찰단의 미사일 시험기지 감시카메라 설치를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클린턴정부에 대한 첫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후세인은 아직 과거와 같은 군중집회를 통한 대미 선전선동,군사력을 통한 도전의지를 비추지는 않고있다. 쿠웨이트를 제외한 전아랍·회교권 국가를 중심으로 일고있는 대이라크 동정분위기를 확대하기 위해서도 주변국들의 경계심 야기가 불리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한 듯하다.
따라서 후세인정권은 주변국들을 불안하게 하지않는 범위내에서 걸프전 휴전협정 위반수위를 넘나들며 클린턴정권의 외교성과 흠집내기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이기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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