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포로 소재 기획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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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MB-TV가 6·25종전 40주년을 맞아 21, 22일 방송한 다큐멘터리 『76인의 포로들』은 흔히 한국전쟁을 다루면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새로운 소재를 발굴, 조명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기획이었다.
이 프로는 한국전쟁 때 남한에 억류 중이던 북한측 전쟁포로 14만명 가운데 석방당시 남과 북을 모두 거부하고 중립국 행을 선택했던 76명의 행방을 찾아 그들의 현재 생활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은 것. 당시 거제도 수용소 내 에서도 포로들은 극단적인 좌우투쟁을 벌여 수많은 포로들이 목숨을 잃은 채 암매장됐으며 이러한 잔혹상은 이념에 염증을 느낀 일부 포로들이 중립국 행을 결심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인도의 델리,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의 상파울루 등을 한 달간 돌며 제작한 이 프로는 사업에 성공해 부유하게 사는 사람, 이국사람과 결혼해 단칸짜리 움막에서 남은 삶을 꾸려 가는 사람 등 이념의 갈등이 남기고 간 흔적을 다양하게 전해줬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서 중립국 행 배를 타고 가다 투신자살하는 주인공과는 달리 화면에 등장하는 그들은 삶에 대한 끈끈한 애착으로 조국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하는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냉전이 끝난 지금 더 큰 쓸쓸함과 허무함을 전해줬다. 네팔여인과 결혼해 움막집에 살고 있는 한 교포는 가난으로 아직 정착을 못해 제작진이 소재를 파악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포로수용소 시절의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그는 매우 힘들어했고 현재의 삶이 그저 버거운 듯한 모습이었다. 이 장면은 제작진의 노력에 의해 가능했던 것으로 프로의 전체적인 무게를 더했다.
그러나 『76인의 포로들』이 다큐멘터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이념 대립에 희생된 사람들이란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프로 전반이 너무 표피적으로 흘렸다는 것이다. 등장 인물들의 인터뷰에서는 현재의 삶에만 치중, 그들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이끌어내는데 부족했던 것 같다.
한국전쟁을 탈 이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좋은 소재임에도 치열한 문제의식이 부족해 다큐멘터리로서의 성격이 손상된 점이 없지 않다.
포로 수용소 내에서의 생활과 중립국 행을 택하게된 배경, 그리고 조국을 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겪는 갈등 등을 통해 이념의 허무 성을 종합적으로 강조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배경음악도 전체적인 분위기를 가볍게 이끄는데 한몫 해 주제와는 맞지 않는 느낌을 주었다.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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