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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계 제3기 "우먼파워"|가·터키 여 총리 뽑아 열기 후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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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3일 캐나다와 터키에서 47세 동갑내기 여성 두 명이 나란히 총리로 탄생하면서 세계 곳곳에 여성정치 참여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여성정치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된 두 사람은 캐나다 집권 보수당차기당수 선출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킴 캠블 국방장관과 터키 연립정부 제1당인 정도당 당수로 선출된 탄수 실레르전 경제장관. 이들의 등장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도 늘 남성우위의 정치현실 속에서 눌려지내던 여성들에게 정치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던져 주게 됐다.
『여자가 정치권력의 정상에 앉게 되면 국가가 위태해진다』는 헤겔의 말은 이젠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사고가 되어 버렸지만 여성이 정치 최전선에 나선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다. 스리탕카의 시리마보반다라나이케가 세계최초의 여성총리가 된 게 60년. 이에 따라 현대사에서 여성지도자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된 것은 3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 지구촌에는 3명의 여성대통령이 권좌를 지키고 있다.

<대처여사 제2기>
90년 2월 니카라과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연합 후보로 나선 비올레타 차모로(64)가 예상을 뒤엎고 압승, 좌익 산디니스타 정권의 11년 통치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같은 해 내각책임제 아래서 행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은 아일랜드에서도 제3야당인 노동당 출신의 메리 로빈슨(49)이 첫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아이슬란드의 비그디스 핀보가도티르 (63)는 80년 첫 당선한 이래 4선을 기록하고 있다.
내각책임제 국가의 총리로 실질적인 최고통수권을 행사하고 있는 현역 여성총리로는 91년 방글라데시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던 베굽 할레다 지아(49)와 노르웨이의「정치여걸」그로하를렘 브룬틀탄트(54)가 있다.
스리랑카의 반다라나이케가 여성총리의 첫 테이프를 끊었을 때를 제1기 여성총리시대라 한다면 제2기의 막을 연 사람은 마거릿 대처(68)전 영국총리다.
보수당 당수로 79년 5월 총선거에 나선 대처는 집권노동당에 압승을 거두고 영국의 첫 여성총리가 된 이후 90년 11월 보수당내반란으로 사임할 때까지 영국정치사상 처음으로 연속3선의 위업을 달성했다.

<부토는 독직 해임>
영국 노동자파업에 맞선 굽힘 없는 정책의지나 82년 4∼6월에 걸쳐 일어난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를 무력으로 제압하고 승리를 거둔 사실 등은「철의 여인」으로서 대처신화를 낳게 했다.
캐나다의 캠블 여사를「작은 대처」라 부르고 실레르 여사가『대처여사를 존경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 등은 여성정치사에서 대처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대처가 이처럼 여성정치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여성이면서도 과감한 정치력을 보인 점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선거를 통해 자력으로 당당히 권력을 차지했다는 점에 더욱 의미가 있다.
이에 비해 반다라나이케나 66∼77년에 인도총리를 지낸 인디라 간디, 74∼76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지낸 이사벨 페론(62), 86∼92년 필리핀 대통령을 역임한 코라손 아키노, 88년 파키스탄인민당을 이끌고 총 선에서 승리해 파키스탄 최초의 총리가 됐다가 90년 독직혐의를 뒤집어쓰고 해임 당한 베나지르 부토(38)등은 그들의 정치배경에 부친이나 남편의 후광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에 두 명의 여성총리가 동시에 탄생한 것은 제3기 여성지도자 시대를 여는 서막으로 볼 수 있다.
그밖에 실질적인 권력은 장악하지 못했으나 얼마든지 여성지도자로 불릴 만한 사람들도 많다.
군사독재에 대항하다 가택연금까지 당한 상태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47)나 얼마 전까지 일본 제1야당인 사회당당수를 지낸 도이 다카코(65)등 이 그들이며 지난14일 미국대법관에 지명된 발더 긴즈버그 판사(60)도 샌드라 오코너 판사에 이어 2번째로 미국의 여성대법관이 됨으로써「우먼파워」를 과시했다.

<미-일은 진출저조>
이러한 여성「스타」들이 꾸준히 부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치참여에 하나의 가늠자가 되는 각료기용이나 의회진출 상황을 보면 전세계 공히 아직도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여성각료 기용은 전통적으로 북구 쪽이 활발한 편으로 노르웨이·스웨덴 등 이 전체 각료의 30∼40%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여성의 정치참여에 관심이 많은 빌 클린턴 미행정부에서는 17명중 4명, 23%를 차지하는데 그치고 있다. 일본에는 문부 상 1명만이 여성이다.
여성정치력의 보다 정확한 잣대가 될 수 있는 여성의회진출은 더욱 형편없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말 총 선에서 2명이었던 여성연방상원의원(총 1백 명)이 6명으로, 28명이었던 하원의원(총4백35명)이 47명으로 불어났지만 아직 6%, 11%수준에 그치고 있으며 영국하원에서도 여성이 1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또한 실권 없는 참의원에 13%의 여성이 진출해 있을 뿐 중의원에는 2·3%에 불과하며 한국의 경우 14대 국회에서 지역구로 당선된 여성은 단 한 명도 없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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