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사분규/경제회생 늦어질까 고심/“문민정부 첫 시련”당정 묘안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강경땐 부작용… 개혁이미지 손상/온건땐 투자위축·수출감소 우려
노사문제가 문민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을 시험하는 새로운 시련으로 대두하고 있다. 매년 이맘때면 노사분규의 불씨를 지펴온 현대계열사 분규지만 이제 막 시작된 올해의 분쟁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이 인식하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은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나서 현대계열사의 노사분규에 대해 엄중 경고한 대목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현재 우리는 경제회복의 좋은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다시 기회는 오지않습니다.』
『금년에 노사분규가 없다면 우리 경제는 확실히 일어날 것입니다』
○중국특수 등 호기
대통령이 18일 노사화합 모범업체대표들과 만나 한 얘기의 서론과 결론은 새 정부가 이번 사태를 보는 사안의 중대성을 웅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새 정부는 이번 노사분규를 개혁성패의 관건으로 삼고 있는 경제회생을 좌우할 분기점으로 보고있다는 얘기다.
새 정부가 지금까지 사정을 해온 것은 개혁의 분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고,개혁은 궁극적으로 국민모두가 잘사는 신경제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바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경제는 되살아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 노사분규라는 악재까지 겹친 것이다.
대통령이 『경제회복의 좋은 기회』라고 말할 정도로 주변여건은 좋은 것이 사실이다. 국내경기가 지난연말 「바닥을 치고 되살아날」 시점에 있고,본격화되고 있는 중국특수는 60년대 월남특수와 중동특수에 이은 절호의 기회임이 분명하다. 더불어 그칠줄 모르는 엔고현상 덕분에 해외경쟁력도 덩달아 힘을 얻고 있다. 그래서 정치권 일부에서는 『역시 YS는 행운아』라고 낙관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이같은 호기를 놓치지않기위해 사정바람에 얼어붙은 경제를 회생시키고자 지난 국회에서 「기업규제완화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할 1차 대상으로 지목하고 민자당에 특명을 내리기도 했다. 이 법이 통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의 투자가 꼼짝하지 않자 대기업 경영자들을 만나 투자를 독려하기도 했다.
이번 노사분규는 또 개혁주체의 한사람인 이인제 노동장관이 이끌어온 새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실험대기이도 하다. 이 장관은 『노동부는 경영자를 위한 기관이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기관』이라는 개혁적 기능을 천명한뒤 「무노동 부분임금」 「노동자의 경영참여」 등을 주장해 파문을 일으켜왔다. 이에대한 재계의 반응은 극도의 불만과 불안이었다. 『노동부장관이 노동자들을 자극했다』며 올해 노사분규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고 정부의 개혁색깔까지 의심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기에 이번 노사분규는 작게는 재계의 불만,크게는 경제악화에 따른 국민적 실망감으로 비화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볼수 있다.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새 정부가 여러가지 대책을 마련중이나 뾰족한 묘안은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 18일 모임에서 『정부는 앞으로 근로자와 사용자 어느쪽에도 치우치지않고 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부분은 사용자보다 파업을 시작한 노동자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더 실려있다. 『노동자들도 자기만 생각하지말고 회사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이 결국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한다』는 말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자들에게 「고통분담」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18일 관계장관회의에서는 「제2노총설립」을 겨냥한 제3자 개입과 노조의 탈법성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정리하기도 했다.
채찍과 동시에 당근도 준비중이다. 21일에는 기획원장관 등 3부장관이 공동기자회견에서 노사분규의 자제라는 「고통분담」을 역설하는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민자당이 7월 임시국회에서 중소기업 복지진흥법·최저임금인상·산재보장보호법 등 노동자들의 복지를 강화할 법안통과를 서두르고 21일 이 문제에 관련,긴급 당정협의를 갖고 성과급에 대한 면세실시 등을 촉구한것들도 당근에 해당한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대응만으로 얽히고 설킨 현대계열사의 노사분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현대정공의 노조위원장 직권조인 문제는 사용자측의 구태의연한 대응자세에 노동자들의 감정까지 고조돼있는 가운데 대법원판례는 회사측 입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현 대자동차 문제에는 이 노동장관이 주장했던 쟁의기간중 최저생계비보장이 걸려있다.
덧붙여 사용자측이 의심하듯 노총을 대신한 제2노총의 주도권을 겨냥한 노동운동권의 헤게모니 다툼까지 잠복해 있다. 그 결과 분규는 현대 6개 계열사로 확산되었고,계열사중 가장 큰 화약고인 현대중공업까지 파업을 준비하고 있는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심각성 점차더해
불법에 대한 강경대응·의법조치는 과거에 보아왔듯 악순환을 초래할뿐 아니라 새 정부의 개혁이미지를 손상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노동자에 관대할 경우 사용자·재계의 반발로 신경제를 위한 투자활성화 등 경기회복을 어렵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사양쪽의 이해가 동전의 양면처럼 대립되고,개혁성과 경제회생을 모두 취하기 어려운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소수의 피해만으로 다수의 박수를 받을 수 있었던 사정과 달리 분규의 계절을 맞이한 새 정부의 고민은 깊을 수 밖에 없다.<오병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