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게 공무원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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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는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7월1일부터 인상키로 했던 공무원 봉급을 금년말까지 동결하는 안을 확정했다. 같은날 민자당의 황명수 사무총장은 대도시 교통난 완화를 위해 공무원들의 자가용 출퇴근을 금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를 보면서 많은 사람이 「공무원은 봉인가」하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국무회의가 공무원의 봉급 동결을 의결한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일의 절차를 밟은 것에 지나지 않기는 하다. 김영삼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지난 3월19일 발표한 담화문에서 사회 각부문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면서 그 일환으로 공무원의 봉급을 연말까지 동결할 방침임을 밝혔었다.
우리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공무원 봉급동결이 적절한 방법은 아니며,이는 오히려 공직사회의 부정과 부패척결에 역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와서 다시 한번 그 타당성 여부를 따지자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걸핏하면 공무원을 동원의 대상이나 희생양으로 삼고,또 삼을수 있다고 보는듯한 안이한 사고방식이다.
황 총장의 견해도 그 자체로서는 일리가 없지 않다. 서울의 경우 출퇴근·통학만의 자가용 이용이 전체 승용차 이용의 50%에 가까운만큼 출퇴근버스를 늘리고 대중교통수단을 개선하여 그 이용을 억제하는 방안은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황 총장의 견해는 그 대상을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들로 한정하고 있다는데 있다. 『공무원들의 출퇴근시 자가용 이용만 억제해도…』 이런 식인 것이다.
모든 직장 근무자가 자가용이용을 억제하고 회사버스로 출퇴근한다면 몰라도 공무원만 그렇게 해서는 교통난 완화에 큰 효과가 없다. 황 총장은 교통전문가도 아닌지라 그 견해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서는 시비할 생각이 없다. 다만 거듭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공무원은 이런데도,저런데도 다 동원하고 희생시켜도 좋다는 생각이 너무도 쉽게 나오는 점이다.
누구라도 개인적인 견해는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황 총장의 위치쯤 되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말 한마디도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하는 사려가 있어야 한다.
최근 공직사회는 이래저래 사기가 떨어지게 되어 있다. 봉급은 동결되고 부정·부패 문제로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데 각종 업무에 동원되는 일은 부쩍 더 많아졌다. 그런가 하면 언제 감사나 사정이 덮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판에 위로의 말은 커녕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금지」 구상이나 하고 있으니 국정이 제대로 수행될까가 걱정스럽다. 정부­여당 책임자들은 공무원에 대한 기본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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