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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좌담 - 2차 정상회담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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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회 김영희 대기자

제2차 남북 정상회담이 28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열린다. 제1차 정상회담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2000년 6월과 달리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된 이후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시기에 이뤄지는 회담이다. 이번 회담의 주요 의제는 무엇이고, 동북아 정세와 6자회담에 미칠 영향은 무엇일까. 본사 김영희 대기자가 8일 장달중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과 만나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진단하고 향후 남북 관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전망했다.

◆김영희=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을 받아들인 동기는 무엇인가. 야당이 주장하는 연말 대선용일까. 아니면 6자회담이 순항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국에 힘을 행사하기 위한 것인가. 회담 성사의 배경부터 짚어 보자.

◆장달중=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 남측 입장에서는 이번에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않으면 노 대통령의 중요한 업적이 사라지는 것이고, 북측으로서는 회담을 해서 손해 볼 게 없다. 여기에 현재 북.미 관계가 매우 잘 풀려가고 있는 데 비해 남북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관계가 개선된다 해도 빌 클린턴 행정부 때와 같은 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남북 관계에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략적 계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시기적으로 한나라당 경선이 이달 19일에 열린다는 점이다. 정상회담은 결정적으로 한나라당 경선에 집중될 관심을 희석시킬 수 있다. 이런 계산이 맞아떨어졌다.

◆이종석=정부가 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에 처음 의사를 전달한 것은 2005년 6월 17일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다. 당시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정상회담을 하려 하겠느냐"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 마치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을 꺼린다는 것처럼 와전된 적이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기본 입장은 일관되게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쪽이었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를 지켜봤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 등으로 북.미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이 어두웠지만, 2.13 합의 이후 북.미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 조짐을 보이자 그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정상회담 때문에 북한에 매달리지는 않았다.

◆김=김 위원장이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를 염두에 뒀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이=적어도 남북이 서로 정상회담을 할 만큼 신뢰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현 단계에서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미국의 대북 압박이 심한 상황에선 남북 관계가 진전되지 않는다고 북한은 생각하고 있다.

◆김=김 위원장은 올 초 "반(反)보수 대연합을 결성해 한나라당의 집권 야욕을 분쇄해야 한다"고 했다.

◆이=정치적으로 북한이 어떤 계산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은 처음부터 정상회담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시기였다. 4년 반 동안 정상회담을 반대했던 야당은 2.13 합의가 이뤄진 올봄부터 "핵 문제 진전에 도움이 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여러 모로 가장 적합한 시기에 이뤄진다고 할 수 있다.

◆김=우리 정부가 정상회담 발표에 앞서 미국에 통보만 하고 사전협의를 안 한 것 같다. 남북 관계가 6자회담보다 반 걸음 뒤에 가야 한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원칙에서 볼 때 이번 정상회담은 6자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장=남북 정상회담에는 명암이 있다. 6자회담을 활성화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북핵 해결에 대한 5개국의 공조체제가 흐트러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앞으로 6자회담 자체가 북.미 중심으로 갈 가능성이 크고, 이는 6자회담의 틀을 약화시킬 수 있다. 북한도 이를 계산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남북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핵문제이고, 북한은 6자회담의 틀을 북.미 관계로 가져가고 싶어한다. 우리의 목표는 북한의 핵 포기다. 결과적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와 북한 핵 포기를 진일보하게 하는 것 아닌가.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는 것은 미국의 북한에 대한 시각 변화와 신뢰 관계 형성에 기여할 것이며, 북.미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6자회담에 대한 영향은 모르겠다.

◆김=정상회담에서 어떤 의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나.

◆장=먼저 평화통일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또 구체적 이슈로 북핵 문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북핵 해결에 대한 남북 정상 간 합의가 도출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냉전 구조 해체의 모멘텀(추진력)으로 북.미 국교 정상화를 들 수 있다. 우리가 김 위원장을 설득해 북한을 국제 무대에 나오게 해야 한다.

◆이=기본적으로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가 논의될 것이다. 7년 전 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는 장족의 발전을 했다. 한편에서는 약간의 불균등한 측면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문제도 이번에 논의돼야 할 것이다.

◆장=제1차 남북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 회담은 군사 문제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이번에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안보 협력에 대한 확언을 받는 게 중요하다. 원론적으로 북측의 양보에 기초해 국방장관 회담을 비롯해 평화체제 방안까지 연계해야 국민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군사.안보 협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 군부의 협력이 필요한데, 현재 남북 실무회담의 진척 상황을 보면 군부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

◆이=어떻게 보면 정상회담 자체가 고도의 군사회담 성격을 갖는다. 당연히 이번 회담이 남북한 안보 상황 개선은 물론, 핵 문제 진전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나아가 동북아시아 안보 협력 대화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평화협정이 있을 것이다.

◆장=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성격에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김 위원장이 북핵 문제 등 안보 협력에 관한 중대 발언을 할 가능성이 있다.

◆김=6자회담의 분위기를 지배할 수 있는 선언적 발언이 나올 가능성이 있나.

◆이=두 정상 모두 튀는 타입인 것은 사실이지만, 노 대통령의 외교안보 운영 자세는 매우 안정적이다. 정상회담에서도 그럴 것으로 본다.

◆김=올 1월 베를린 북.미 직접 협상을 계기로 북한 핵 문제에 관한 주도권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 이제 우리도 정상회담을 통해 주도권을 쥘 수 있나.

◆이=베를린 회담도 그랬지만 6자회담의 틀이 유지된다는 게 반드시 6자에게 똑같은 발언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회담이 6자회담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발언권이 강해질 것이란 전망은 사실이다.

◆장=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회담이 중국과 일본을 소외시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김=이번 정상회담이 동북아 평화 안정, 그 이전 단계인 4개국 정상회담의 첫걸음으로 볼 수 있는가.

◆장=4개국 정상회담 이야기가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시기상조라고 본다. 4개국 모두 국내 정치가 힘든 상황이어서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다만 김 위원장이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김=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 응하면서 임기가 5~6개월 남은 노 대통령의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도 계산했다고 보는가.

◆장=했을 것이다. 북측에선 손해 볼 것이 없다. 한국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도 관계없고, 리버럴한 정권이 들어서도 좋다. 또 북한 입장에선 레임덕이라는 상황이기에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이=북한이 어떤 계산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2.13 합의의 2단계 조치인 핵 불능화 단계를 풀어야 하는 전환점에 있다고 볼 때 어쩌면 북한으로선 정상회담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정리=박소영 기자, 이신영 인턴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2.13 합의=올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에서 이뤄진 북한 비핵화에 관한 합의. 북한은 6자회담에서 중유 5만t을 받는 조건으로 60일 안에 영변 원자로(5MW급) 등 5개 핵 시설을 폐쇄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복귀시키기로 약속했다. 한국.미국.중국.러시아 등 4개국은 북한이 핵 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신고서를 제출하고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을 불능화하면 중유 95만t에 해당하는 에너지 또는 물자를 추가로 지원키로 했다. 하지만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예치된 북한 자금의 동결 해제 문제로 이 합의의 실행은 6월까지 지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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