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12·12」태풍 별 96명 퇴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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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79년 12·12와 80년 5·17사이 6개월간 등장한 인물 가운데 최규하 대통령과 이희성 육군참모 총장의 역할·입장은 아직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 있다.
최 전대통령은 후일 회고록에서 밝히겠다며 계속 입을 다물고 있고 이 전 총장은 88년 청문회에 나왔지만 핵심을 밝히는데는 비켜갔다.

<최 대통령과 독대>
12·12후 2년간 육참 총장을 지낸 이씨는 막연히 5공 신 군부의 정권 찬탈을 밀어준 조역으로 알려져 왔고 본인 스스로 그런 인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12·12를 쿠데타적인 사건이라고 규정한 뒤인 최근에서야 당시 이희성 대장이 신 군부의 영향력 하에 쉽게 들어가지 않고 독자영역을 추구하려 했다는 소리가 이씨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 시점에서의 이 대장 역할이 정확하게 재조명되는 것은 신 군부의 단계별 군권 장악과 최대통령의 권력관리 의지와 관련해 흥미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80년 4월초 이 육군 총장겸 계엄사령관은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극비리에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최 실장의 말인즉 『합수 본부장인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 부장을 겸직하겠다며 최대통령에게 건의를 올렸다』는 것이었다. 이 사령관으로선 처음 듣는 놀라운 얘기였다. 12·12 다음날인 13일 이희성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육참총장에 임명돼 그때까지 중정 부장은 공석이었다. 전 본부장은 내심 그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가 중정 부장을 노린 것은 중정에 숨져져 있던 엄청난 규모의 정치자금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전 본부장은 80년3월말 최 대통령을 독대하면서 『보안사령관이 겸직해야 김재규 사건 이후 풍비박산된 정보부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중정부장 임명은 대통령의 직접 판단사항이라는 이유로 전 사령관은 전임자이며 계엄 하 3권을 명목상 장악하고 있던 이 총장과 의논하지 않았다.
최 실장은『계엄사령관께서는 어떻게 판단·평가하십니까』라고 의견을 구했다. 군의 정보계통에 오래있었던 이 총장은 전 사령관의 의도를 알만했다.
그는『일국의 중요 정보기관들을 한 사람이 겸직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정 부장을 겸하려는 전 사령관의 작전은 이미 다각도로 진행 중이었다.
전 사령관은 최 대통령에 이어 신현확 국무총리를 찾아가 협조를 구했다.
신 총리 역시 『내 권한 밖의 일이지만 의견을 말한다면 반대』라고 했다.
신 총리는 이미 최 대통령에게 『정보부를 지금처럼 흐트러진 상태로 두지 말고 책임자를 임명하되 민간인 출신으로 해서 정보계통을 양립시켜야 합니다』고 진언했던 터였다.
이에 대해 최 대통령은 듣고만 있었고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전 보안사령관의 겸직 요구는 관철됐던 것이다.
이 과정을 잘 아는 Q씨의 증언.
『신 총리가 전 사령관의 정보부장 겸직을 반대했다는 것은 88년 청문회 때 밝혀졌지요. 그러나 이희성 총장이 명확히 반대했다는 것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대목입니다. 총리가 이미 정보기관의 양 팀을 건의한데다 계엄사령관까지 반대의사를 확인했음에도 최 대통령이 전 사령관의 건의를 무기력하게 승인한 진짜 이유가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고 있어요. 계엄사령관의 반대는 백만원군으로 활용될 수 있고 총리까지 반대해 곤란하다고 했으면 그만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2·12로 하나회가 군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지만 최 대통령이 휘두를 수 있는 군 통수의 공간은 분명히 있었거든요. 최 대통령이 전 사령관과 이희성 총장을 상호 견제시켰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요. 앞으로 이런 점에 대해 최대통령의「역사를 위한 증언」이 있어야 할겁니다』

<전씨 진급에 제동>
그 시점에서 이 사령관이 얼마나 독자적인 판단과 지휘영역을 확보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계엄사와 보안사 사이에 미묘한 갈등이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계엄사까지도 신 군부의 일원이 된 황영시 참모 차장이 포진해 이 총장을 견제하고 있어 그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었다 .
이 총장이 정보부가 대통령의 직속기관인 만큼 의견만 제시할 뿐이지 관여할 문제는 아니라는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는 개인적 견해와 관계없이 명령 체계와 통솔원칙에 충실해 최 대통령의 결재가 나면 수용했다.
때문에 이 총장은 최 대통령에겐 믿을 만한 언덕이 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비서관 출신F씨는『이 총장의 겸직 반대가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으나 최 대통령이 계엄 사령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 사령관의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이 총장의 군내위치가 미약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일부 군부출신 핵심 인사들은 이 총장이 전 본부장의 중장진급을 두 차례나 제동을 건 적이 있음을 확인하면서 최 대통령의 군부 장악의지 부족 탓이 더 컸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총장이 전 사령관의 특진을 반대한 것은 꽤 알려져 있다.
80년 1월초 일이었다.
하루는 주승복 국방장관과 조문환 차관이 잇따라 계엄 사령관실로 찾아왔다. 용건인즉 구전 합수 본부장을 중장으로 진급시킵시다. 보안·정보·수사의 업무를 조정·관할하는 합수본부장의 임무와 비중으로 보아 중장진급이 타당하다고 봅니다』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 계엄사령관은 딱 부러지게 반대했다. 『진급의 명분이 없습니다. 전 사령관이 사단장을 마친지 1년밖에 안 됩니다. 서열에서나 지휘력 면에서 중장으로 보안사령관을 보임 하기에는 이릅니다. 그리고 균형상 곤란합니다』육본인사 운영감을 지낸 이 사령관의 이 같은 반대에 공군총장 출신인 주 장관은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2월 들어 다시 주 장관이 진급문제를 제기했으나 이 총장은 거절했다.

<"이 총장은 얼굴뿐>
국보위 출신 A씨의 증언. 『이희성 장군은 전 사령관에겐 거북한 존재였습니다. 인사 면에서 이 총장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했지요. 12·12그룹의 의사에 일방적으로 따라간 것만은 아닙니다.』전 사령관은 자신의 구도가 자꾸만 빗나갔지만 이 총장에게 대놓고 그런 불평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진급문제가 물의를 빚자 총장실로 찾아와「내 진급문제로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라고 해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 사령관은 결국 진급문제를 관철시켜 3월1일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 총장은 점점 더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이 계엄사령관이 허수아비였음은 국보위 발족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됨으로써 드러났다.
전 사령관은 참모총장을 거치지 않고 바로 최 대통령을 찾아가 재가를 받았다.
그래놓고 이 총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5·17계엄 확대조치를 발표했다. 실세가 아닌 것을 넘어 그는 신 군부가 하기 곤란한 일을 맡아주는 대리자로 전락해 있었다.
신 군부는 사실상 계엄 사령관의 권한을 국보위로 끌어왔고 이 총장은 얼굴뿐이었다..
이 총장은 근본적으로 그렇게 운명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계엄 사령관에 기용된 것은 12·12의 결과다.
그를 추천한 것은 12·12거사그룹이다. <26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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