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판사계급 대폭 축소(개혁 이렇게 하자: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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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자문기관 인사위를 의결기관으로/「전관예우」 없애 이익집단 벗어나야
사정바람을 몰고온 지난번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도 사법부 앞은 비켜갔다. 어째서인가.
사법부는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마지막 보루요,그런만큼 입법부나 행정부보다 더 높은 도덕성을 요청받고 있다. 때문에 차라리 덮어두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는지 모른다. 거기에는 또한 사법부 스스로의 자율적 개혁에 대한 기대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결과는 어떠한가.
○부장판사제 폐지
지난 5월초순 대법원은 사법운영 개혁안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변호사와의 골프회합 규제 등 주로 지엽적이고 기술적인 차원의 것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그 뒤 소장판사들의 독자적인 의견 제시가 잇따랐다. 이들의 주장은 한가지로 모아진다. 법관의 직급제도를 개선하고,법관인사위원회 운영을 혁신하며,민주적인 판사회의를 법제화하는 등 요컨대 법관인사제도를 비롯한 내부조직을 개혁하자는 것이다.
실로 법관인사제도,특히 판사계급제도야말로 재판의 독립을 해치는 가장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임에 틀림없다.
현재 우리나라 법원은 지방법원 배석판사에서부터 대법원장에 이르기까지 10여단계의 가파른 계급제로 구성되어 있고,승진·전보의 결정권을 대법원장이 쥐고 있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성향이 그의 인사권을 매개로 개개의 판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같은 관료화·계급화된 법원조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재판의 공정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재판독립의 관건은 법원밖이 아니라 법원안에 있는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해 다음의 몇가지는 사법개혁을 위해 필수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들이다.
첫째,판사계급제를 철폐해야 한다. 만일 승진·직급제도와 전면적 폐지가 너무 급진적이라면 과도적으로 직급단계의 대폭 축소방안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부장판사제도를 폐지,실질적인 합의가 가능하도록 해야한다.
둘째,근래에 자문기관으로 설치된 법관 인사위원회를 의결기관으로 바꾸어 한사람에 의한 전횡을 막아야 한다.
셋째,사건배정을 비롯해 법원의 사법행정 전반을 관장하는 판사회의 또는 판사대표회의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판사 수에 따라 일정규모 이상의 법원에는 판사들에 의해 선출되는 판사대표회의를 두고,소규모 법원에는 판사전원으로 구성되는 판사회의를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표회의 설치를
흔히 우리나라의 법원인사제도는 독일제도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독일은 2차대전 이후 특히 60년대 이래 점차적인 사법개혁을 통해 관료제적 성격을 떨쳐버리고 민주적 성격을 강화해왔다. 예를 들면 판사들의 선거로 구성되는 판사자치위원회에서 재판부의 구성을 정하고 사건을 배정한다. 또 각종 법원에 판사의 선거로 구성되는 재판관 인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한편 오늘의 우리 법이 안고있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검찰·변호사를 포함한 법조계 전체가 폐쇄적인 특수 이익집단화하는 현상이다.
과다한 변호사 수임료나 이른바 「전관예우」라는 이름의 비리가 그러한 현상의 병적 증후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현상은 시민들의 입장에서 볼때 곧 「사법정의에의 접근」을 차단,제한한다는 의미가 된다. 특히 시민들이 손쉽게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다.
여기에서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법조계의 특수 이익집단화 현상에서 오는 각종 비리들이 결코 법조윤리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며 법조윤리의 타락을 가져오는 구조적 요인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우리나라 법률서비스 시장이 기득권 옹호를 위한 공급제한으로 인해 부당하고도 과다한 독과점 이윤을 산출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91년도의 통계를 기준으로 몇몇 외국과 우리나라의 변호사를 비교해보면 변호사 1인당 인구수에 있어 미국이 3백명,독일이 1천1백명,일본이 8천5백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약 1만7천8백명이나 된다. 즉 인구수에 대비한 우리나라 변호사수는 미국의 60분의 1,독일의 16분의 1,일본의 2분의 1에 불과하다.
변호사의 수 또는 사법시험 합격자의 적정수 문제는 결코 법조실무가 대 법학교수 사이의 문제가 아니며 본질적으로 법률서비스 이용에 관한 소비자 문제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법조 전문화를 위해서도 양적 확대가 전제조건이 된다.
○법조인 수 늘려야
그밖에도 사법개혁을 위한 여러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국선변호인제도와 법률구조제도의 개선을 통한 사법복지의 실현,법률가 양성제도의 근본적 변혁,권위주의적 법정관행의 개선을 통한 「사법의 시민화」또는 「사법의 인간화」 구현 등이다.
이러한 여러 개혁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상층부만이 아니라 법원 전체,법조계 전체의 의견이 집약돼야 하며,특히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의 주체인 시민의 입장이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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