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인질 사태 장기화 대비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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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프가니스탄의 반(反)정부 무장세력인 탈레반에 의해 한국인 봉사단원들이 피랍된 지 오늘로 21일째다. 인질 사태와 관련, 관심을 모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테러 집단에는 양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어제 새벽 끝났다. 탈레반 수감자와 인질의 맞교환이라는 납치범들의 요구에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는 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두 정상이 최종 확인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다. 이에 따라 한국인 21명의 목숨이 걸려 있는 아프간 인질 사태는 추가 인명 피해를 막으면서 장기화에 대비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원칙 때문에 납치범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지만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양국 정부는 밝히고 있다. 그런 만큼 두 나라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유연한 해법을 찾는 데 좀 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마침 납치범들이 탈레반의 여성 수감자와 여성 인질의 교환을 제안하는 등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만큼 죄질이 가벼운 탈레반 여성 수감자를 카르자이 대통령이 사면(赦免) 형식으로 먼저 풀어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부로서는 탈레반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주도적으로 사태 해결의 돌파구를 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대면(對面)협상 얘기가 나온 지 일주일이 다 돼 가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진전이 없다. 협상 장소 등을 둘러싼 이견 때문이라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납치범들의 태도가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데다 일부 여성 인질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있다. 정부는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조속히 협상에 나서라.
 극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인질들과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생각하면 한시가 급하지만 조기에 마무리되기 어려운 것이 인질 사태다. 과거의 사례를 봐도 그렇다. 이미 사태가 장기화 국면에 들어선 만큼 인내심을 갖고 정부와 관련국들의 노력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