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위장 임금타결권 행사 첫시험대/파업 3일째 현대정공 쟁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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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교섭위원없이 비밀장소서 타결 무효/노측/정당한 직권조인… 파업한건 불법/사측
울산현대정공 사태는 노조위원장의 임금타결권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이 노동현장의 시험대에 오른 첫사건이란 점에서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부는 4월28일 노조대표의 임금체결권 문제와 곤련,쌍용중공업 노조가 창원시장을 상대로 낸 단체협약변경명령 취소 소송에서 『단체협약 체결권한은 교섭대표자에게 있다』며 『노조대표자에게 「단체교섭권」만 주고 「단체협약체결권」을 제한한 일부 회사의 단체협약안은 모두 효력이 없다』고 판시,노조위원장의 직권조인에 의한 임금타결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었다.
대법원의 이같은 판결은 협상에 임하는 노조대표의 권한을 강화,노사협상을 원활히 진행시켜 노사안정을 기한다는 취지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노사대표가 만나 정당하게 협의를 거친 합의사항에 대해서는 노조원들이 불만이 있더라도 이의 제기를 할 수 없다는게 판결의 본뜻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노사대표가 공개된 자리에서 정당하게 만나 합의한 것이 아니라는데 쟁점의 주안점이 있다.
현대정공의 임금협상은 노사의 교섭위원이 전혀 참석하지 않은 비밀장소에서 고도웅부사장과 김동섭위원장 사이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문제의 소지다.
노조측은 또 『김동섭위원장이 납치감금된 상태의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임금협상을 타결지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조측은 그 증거로 ▲위원장 서랍속에서 발견된 임금협상 합의서의 사인이 평소 사용하던 노조직인을 날인한 것이 아닌데다 찍혀 있는 지문도 제3자에 의해 강제로 눌려진듯 식별이 불가능하고 ▲5일 오전 노조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은 김 위원장이 『합의서가 책상서랍안에 있으니 사무장에게 주라』고만 말한 뒤 급히 전화를 끊은 점 ▲김 위원장이 4일 오후 2시쯤 제14차 임금교섭을 마치고 현대그룹 노조총연합 사무실로 가던중 행방불명된 점 ▲김 위원장이 서류를 들고 나간후 잠겨있던 서랍속에 합의서가 들어 있었던 것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회사와 노동부측은 『노조위원장의 직권조인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정당한 권한행사』이며 『이를 문제삼아 파업을 벌이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맞서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사태는 현대계열사들의 공동임금투쟁을 주도해온 현대그룹 노조총연합의장(현총련)이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업장에서 임금협상을 노주위원장 직권조인으로 타결지었다는 점에서 다른 사업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쟁의행위를 결의하고 조합원 찬반투표 일정을 잡아 놓고 있는 곳은 현대자동차(15일)·현대중전기·현대중장비·현대정공 창원공장(이상 16일) 등 4개사.
곧 실시될 이들 계열사들의 찬반투표 결과가 나머지 계열사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이번 사태가 이처럼 잇따른 계열사들의 임금협상에 미칠 영향을 조기에 차단,기선을 제압하려는 회사측의 의도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현대정공 울산공장 노조원들은 이번 사태에 분노와 배반감을 느낀 나머지 파업을 장기전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높은데다 현총련과 노동단체들이 현대정공의 파업지원 결의를 다지고 있어 상당한 진통을 겪게될 전망이다.<울산=김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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