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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북한 주민들도 너댓명만 모이면 주패(트럼프)판을 벌인다.
기차간은 물론 공원·캠퍼스 내에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주패놀이로 내기를 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는게 귀순자들의 얘기다.
82년에는 김정일이 주패놀이를 오락으로 규정하면서 인민학교 학생들도 주패 가장을 꿰고 있을 정도.
말하자면 주패는 빡빡한 북한체제를 굴리는 윤활유로 뿌리를 내렸다. 물론 도박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적 공동생활질서를 침해하는 범죄로 가차없이 다스린다.
북한 형법 1백34조에는 「돈 또는 물건을 걸고 도박을 한자는 1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하며 돈과 물건은 몰수한다」고 규정돼 있다.
최근에는 연변·북송동포를 통해 화투가 들어오면서 「고스톱」이 시나브로 침투하고 있는 상태다.
슬롯머신은 평양 고려호텔 등에 설치돼 있지만 카지노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일반 주민들은 슬롯머신 근처에는 얼씬도 못한다고 전해진다.
현재 주민들 사이에 성행하는 주패놀이 방식은 중국식인 「명령주」 「사기(산다의 뜻)주」 「5, 10, K주」 등 크게 세 가지.
이 가운데 4명 이상이 짝수로 편을 갈라 치는 「명령주」가 가장 보편화돼 있다고 귀순자들은 전한다.
포커는 북송교포, 외국물을 먹은 고급당료 및 관료정도만 치고 대부분의 방식은 중국식이다.
주민들은 주패를 가지고 속성상 팔뚝·이마 때리기 등 「고전적」 놀이를 하기보다는 술·담배·양권 등 내기도 박을 하기 일쑤다.
화폐가치가 적은 만큼 상습도박이라 하더라고 돈노름은 거의 없다는게 귀순자들의 얘기다. 반면 돈놀이는 화교나 북송교포들 사이에서만 성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상습도박이라도 판돈·물건이 크지 않을 경우 사회안전부 요원들도 눈을 감아주는 탓에 내기성 주패노름은 넓게 퍼져있다.
주패는 외화상점에서 북한·중국산의 경우 북한돈으로 10∼20원(1원은 우리 돈으로 3백20원), 일제는 2백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다만 북한·중국산의 경우 금세 부푸는 고급마분지로 돼있고 수명이 짧다. 북한은 지금도 주패를 당원 15∼30명을 책임지는 당세포와 군인들에게 해마다 공급하고있다.
특히 병실(내무반)에서도 주패놀이는 권장되고 있지만, 한판에 딤배 1개비씩 등의 내기가 많다고 전해진다.
화투는 70년대 초에 마분지 등에 난초 등을 그려 전래돼오다 자취를 감췄으나 최근 연변동포들이 서울을 들락거리면서 다시 침투하고 있다.
특히 연변일대 구멍가게에는 「남조선 화투팝니다」라는 입간판을 그려놓았을 정도인데, 국경무역을 하는 암거래상을 통해 자연스레 북쪽으로 흘러 들어가는 상태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화투 모양은 물론 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고 귀순자들은 전한다.
실제 귀순자들 가운데 북한에서 화투를 보았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을 정도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일본 카지노·슬롯머신계를 조총련계 인사들이 장악하고있는 점이라 하겠다.
재일조선인동포 야구협회회장 겸 북한야구협회 부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정원덕씨는 카지노·슬롯머신으로 거액의 돈을 챙겨 북한야구의 재정적 대부로 자리를 굳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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