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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조의원 처리… 민자·검찰의 미심쩍은 태도(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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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권력의 시녀­. 경찰이 정치권의 외압에 마구 흔들리고 정치폭력에 「보호용 외투」를 입혀주기에 급급했던 5∼6공 당시 검찰에 쏟아졌던 비난이다.
군사정권의 부패와 비리는 모두 가려지고,저항하거나 비판하는 쪽에만 「엄정한 법적용」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문민시대 출범이후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법이 더 이상 정치권력의 자의적 판단이나 선호에 따라 제멋대로 적용·재단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고 정치권과 검찰도 『법이외의 목적에 따라 수사대상이 취사선택되는 일은 결코 없을것』임을 강조해왔다.
최근의 현실은 정말 그런가.
민자당 이원조의원은 89년초 5공비리 수사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학봉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과 함께 대검중수부에 소환됐었다. 다른 두 사람은 모두 구속됐지만 이 의원은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풀려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막연한 친구사이인 이 의원은 그위 6공내내 「금융 황태자」로 군림하며 금융계 인사를 주무르고 정치자금조달을 도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정부 출범이후 이 의원은 또 다시 꼬리가 잡혔다. 검찰은 동화은행 비자금을 수사중이던 안영모은행장이 이 의원에게 수억원의 뇌물을 줬다는 혐의를 찾아냈고 수표추적에 나서 물증까지 확보했었다. 물증이 확보된 사실을 알게 된 법조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이 의원도 이제는 끝났다』는 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나도는 소문은 전혀 달랐다.
『대선때 선거자금을 모아준 공로가 있어 이 의원은 절대 사법처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의원직사퇴·민자당탈당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소문을 입증하듯 이 의원은 검찰이 물증을 확보할 무렵인 18일 신병을 치료한다며 돌연 일본으로 출국했다.
정치권에서는 처음엔 『이 의원을 즉각 불러들이겠다.
민자당에서 제명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검찰일각에선 『이 의원이 오지 않을 줄 알고 괜히 하는 소리』라며 시큰둥한 모습이었다. 이 의원은 출국한지 열흘만에 국회의원직 사퇴서와 민자당 탈당서 제출이라는 「예정된 수순」을 밟았다.
이 의원 등과 함께 안 행장으로부터 2억1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27일 검찰에 구속된 민자당 김종인의원은 검찰에서 『나는 가장 깨끗한 6공 실세다. 재주좋은 사람은 다 피하고 나같이 어리석은 사람만 남았다』며 한탄했다. 큰고기는 모두 빠져나가고 피라미만 걸려드는 검찰의 「요술그물­」.
국민들은 정치권과 검찰이 더 이상 요술그물이 아니라 아무리 그물눈이 넓어도 큰 죄인은 모두 거린다는 천나지강을 펼쳐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김종혁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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