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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정변 때마다 수난… 국방 2인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권영해 국방부장관의 하루일과는 오전 8시30분 자신의 집무실에서 북한의 군사동향을 보고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시보고일 경우 24시간동안 있었던 비무장지대·해안선 일대에서의 경계태세는 물론 북측의 미미한 군사적 징후까지도 낱낱이 보고된다. 이 자리에는 늘 장관보좌관이 배석, 지시사항을 기록·전달한다.
일요일일 경우 이같은 보고는 한남동 장관공관에서 이루어진다.
북한 군사정보만을 전담하는 7235부대는 대령급 정보장교 한 명을 매일같이 국방부에 보내 장관에게 이를 보고한다. 그 뒤를 이어 국방부 정보본부장(중장급)의 국제정세에 관한 종합보고가 이어진다.
김영삼정부 출범이후 국방부장관에게는 또 한사람의 정보보고자가 늘어났다. 국군기무사령관이 그다. 과거 군출신 대통령 치하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직보체제가 무너진 대신 국방장관이이를 대행하게 됨으로써 국방에 관한한 제2인자의 위상을 다지게 된 것이다.

<기무사령관 보고 받아>
국방부장관의 모든 업무는 이처럼 사전 군사정보를 파악하는 일로부터 비롯된다. 장관이민간인 출신이라 하더라도 그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은 현역 준장급인 「군사보좌관」이 맡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취임 1백일째를 맞고 있는 권영해 국방부장관은 요즘「권길동」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눈코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있다.
군인사비리사건 수사가 한창이던 어느날은 안보관계장관회의·국무회의·진급장성 신고배석 등 하루에 청와대를 네번씩이나 드나들었는가 하면 지휘관 전역식 및 이취임식 등 야전부대 행사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 보좌관의 일정보고는 대부분 이동중 차량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뤄지게 마련이다.
그런 탓인지 그는 취임이후 체중이 무려 5㎏이나 빠졌다고 한다. 취임초기 건강을 위해 마음먹었던 주말 테니스와 아침 헬스클럽 운동은 엄두조차 못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만큼 그의 권한도 막강하다. 현행 국군조직법상 국방장관은 군사행정 전반에 관한 군정권과 작전지휘권인군 군령권 동시에 행사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각군 참모총장 및 합참의장에 대한 추천권을 가지며 모든 장교들에 대한 사법권도 행사한다. 군형법상 군사법원의 형을 선고받은 장교에 대해 이를 사면할 수 있는 권한도 갖는다.
국방장관은 국무위원 25명 가운데 총리와 경제·통일분야 부총리를 제외한 외무·내무·재무·법무장관에 이어 서열 다섯번째. 국방부가 집행하는 연간 예산도 전체정부재정의 거의 30%(약 9조8천억원)에 육박, 단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약 60%는 운영유지비에, 나머지 40%는 군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국방장관에 대한 경호는 삼엄해서 청사 2층 집무실앞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퇴근할 때까지 무장헌병 2명이 출입자들을 일일이 감시·통제한다. 출·퇴근 시를 비롯, 이동시에도 잘 훈련된 경호요원들이 장관차량을 바짝 따라붙는다.
한남동공관 경비 역시 마찬가지. 헌병 1개 대대가 공관에 주둔하면서 외곽경비는 물론 공관내 근접경호까지 담당한다. 요즘에는 특히 장관에 대한 신변경호가 부쩍 강화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변경호 부쩍 강화돼>
48년 건군당시 초대 국방장관은 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이범석씨로 현재. 30대인 권영해장관까지 치면 29명이 장관직을 역임했다. 현석호 장관이 9대와 11대 장관을 중임 했기 때문이다.
현씨이후 지금까지 민간출신 국방장관은 아직 배출된바 없다.
5·16을 분기점으로 이후국방장관은 계속 예비역 장성들의 독무대가 돼왔으며 특히 육군대장출산이 주류를 이뤘다. 국방부의 역사는 곧 육군사와 맥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는데 현 국방장관과 육참총장은 똑같이 30대째를 맞이하고 있다.
군출신 장관 25명중 손원일·김성은 등 해군출신 2명과 김정렬·주승복 등 공군출신 2명을 제외한 나머지 21명 모두가 육군출신이다.
출신계급별로는 19대 유재흥씨를 끝으로 소·중장출신 국방장관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후 서종철씨부터는 계속대장출신이 맡아왔다. 그러므로 현 권영해장관은 4대 신태영씨와 함께 국방부사상 보기 드문 예비역 소장출신국방장관이다.
국방장관만큼 재임기간이 짧은 경우도 드물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곧 군이 우리나라 현정사를 지배해왔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으로 4·19이후 1년 동안 무려 4명의 장관이 교체되기도 했다. 외침으로부터의 국토방위라는 막중한 책임과 권한을 지니고 있는 국방부장관은 그러나 내란과 같은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한결같이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5·16당시 현석호씨가 그랬고 12·12당시 노재현씨가 그러했다. 현장관은 사태당시 반도호텔에서 쿠데타군에 체포됐고, 노장관은 용산 미8군 벙커로 도주하는 무력함을 보여주었다.

<우수장교 육본선호>
국방장관은 직제상 합참의장이나 각군 총장보다 분명히 우위에 있지만 그동안 실질적인 권한은 육참총장에게 실려있었다. 그래서 국방부는 육군이 지배한다는 의미의 「육방부」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자연스레 통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우수한 장교가 국방부보다는 육군본부 등을 적극 선호해왔었다. 현재 국방장관이 육군참모총장이나 합참의장을 완전장악하고 군정 및 군령최고사령탑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세우게 된 것은 그동안의 사정으로 보면 유례없는 일로 문민우위 군통수체계로의 변화를 실감케 해주고 있다.
역대장관중 정규 육사11기에서는 ▲이기백 ▲정호용 ▲이상훈씨 등 3명을 배출, 최다를 기록했는데 이씨의 경우 버마 아웅산사태와 김일성 사망설 발표로, 정씨는 최근12·12와 5·18광주민주화운동 관련으로, 이상훈씨는 윤석양 이법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폭로로 각각 도중하차하거나 곤욕을 치렀다. 그런가 하면 정내혁씨는 국회의장·민정당대표까지 역임하면서 노후에 뇌물스캔들로 불명예 퇴진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동안 군사기밀보호법의보호와 군출신 통치자들의 특별배려 속에서 구름위의 성역에서 노닐던 군의「세속화」는 가속화 될 것이다. 최근의 군인사비리 부정 폭로나 12·12사태의 단죄 등은 그러한 흐름의 일단이며 그 속도는 아마 더욱 빨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 추세에 맞춰 조만간 국방장관도 민간인출신이 임명되는 진정한 문민우위 시대가 올 것이다. 현재 군이 앓고 있는 홍역은 바로 그와 같은 과도적인 과정에서 겪는 산고일 것이다. <김준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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