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蘭)’ -박목월(1916~78)
이맘쯤에서 하직하고 싶다.
좀 여유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 받은 것
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초를 기르듯
마음에 애틋하게 버린 것에서
미소로 살아나고/잎을 피우고,
그리고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그윽이 향기를/머금고 싶다.
문예지가 없었던 1954년 다음해 정월 ‘현대문학’ 창간호에 실린 목월 시다. 목차를 보니 서정주·유치환·김현승·김용호·박남수, 그리고 마지막에 박목월이 나온다. 52년 된 바스러지는 옛 문예지 속에서 작고한 시인들의 시를 보니 감회가 깊다. 이때 목월 나이 서른아홉. 젊은 나이에 목월은 벌써 하직하고 싶어했다. 고단하지 않은 게 하나도 없다.
<고형렬·시인>고형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