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원 출국 “방조냐 아니냐”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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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선자금 고리 은폐기도”야/사정형평성 흠갈까 곤혹 여
동화은행 비자금 수뢰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아온 이원조의원(민자)의 돌연한 출국을 놓고 정부·여당의 묵인 또는 방조여부가 날카로운 정치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우선 이사건과 「슬롯머신 수뢰」등에 연관된 여타 혐의자들이 감시 또는 구속·소환수사를 받고 있는데 반해 이의원만 아무런 제지를 받지않고 출국할 수 있었던 배경에 강한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
박지원대변인은 『이 나라의 공권력이 또 한번 형평성을 잃고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정부가 취사선택해서 누구는 해외로 도피시키고 누구는 출국금지시키면서 구속한다면 사정이 공정하게 이루어진다고 믿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원의 출국이 공권력의 「선택적 적용」에서 드러나듯이 정부의 의도적 비호아래 이루어진 「도피성 외유」라는 강한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정황근거로 민주당측은 이 의원이 지난 11일 관용여권을 반납하고 일반여권을 되찾아갔다는 점을 들며 그로부터 1주일이나 지나도록 이 의원의 출국기도를 정부에서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의 출국이 임시국회가 거의 끝날 시점에 은밀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국회폐회후 수뢰사건에 연루된 정치인들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될 경우를 대비,대선자금 수수의 핵심을 감추기 위한 집권측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민주당은 보고 있다.
김병오정책위의장은 『이 의원이 지난 대선에서 김영삼후보의 대선자금 조달루트였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익히 알고 있다. 정부의 방조없이 그가 출국했을리는 없다. 뭔가 깊숙이 음모가 숨어 있으며 전략적 측면에서 출국시켰다고 본다』고 단정지었다.
○…이 의원의 비밀출국이 정부의 묵인하에 이뤄진 사실상의 「추방」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청와대와 민자당지도부는 「성역없는 사정」원칙에 흠이 될까 이를 적극 부인하면서 매우 곤혹스러워 했다.
이 의원같은 잠재적 폭발성을 가진 대선공로자들은 은근 슬쩍 봐주고 박철언의원처럼 반김영삼진영에 섰던 「미운 인사들」은 사정대상에 놓는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사정의 편향성은 김영삼정부의 개혁추진에 도덕성 문제를 야기하는 쪽으로 발전될 소지가 있다.
민자당은 이 의원의 출국사실이 알려지자 즉각 『당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사전교감」이나 「당차원의 묵인」이 없었음을 강조했다. 이어 19일 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이에대해 『잘못된 일로 유감스럽다』는 공식입장을 정리했다. 황명수사무총장은 심지어 「해당행위」라고까지 몰아세웠다. 그리고 당직자들은 저마다 「묵인」가능성을 강력히 부인하고 나섰다.
김덕룡정무제1장관은 『이 의원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을 했기에 새정부에서도 처리하기 곤란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새정부가 이 의원에게 부담느낄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측은 이씨의 출국을 「도망」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형평성 논란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 청와대관계자는 『물증이 안나온 이의원의 동정을 당국이 통제할 수는 없지않느냐』면서 이 의원출국을 편파사정시비로 연결하는데 대해 역정을 냈다.<오병상·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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