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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빠진 TK 서먹한 모임/정호용의원 지구당개편대회 분위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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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후배밀치며 자리 차지해야 하나”/참석자 대부분 굳은 표정속 착잡/같은 시간 문희갑씨 사무실 개소/“고교선배에 노골적 대항” 비난도
민자당의 김종필대표와 수행의원·기자들이 탄 버스가 정호용의원을 신임위원장으로 뽑는 민자당 대구서갑지구당 개편대회장소인 황제예식장에 도착한 것은 15일 오후 2시쯤이었다.
그러나 이날 행사의 최고위급 손님인 김 대표를 입구에서 안내하는 정 의원측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날 오전 군경계까지 나와 김 대표를 맞은 거창의 이강두의원과는 대조적이었다.
오후 2시30분쯤 정 의원이 부인과 함께 행사장에 나타났다. 정 의원은 연신 웃었지만 단상의 김윤환·김용태·김한규·장영철·최재욱의원 등 대구·경북출신들은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았다.
이들은 정 의원의 경북고후배이자 전임지구당위원장으로서 정 의원과 대결해온 문희갑씨가 같은 시간에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추종자들과 함께 사무실 개소식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상을 차지한 인사들의 면면도 이빨빠진 TK의 자화상 그대로였다. 만약 대회가 새정부 출범전이나 최소한 재산공개파동 전에만 있었더라면 TK의 원로격인 박준규국회의장을 비롯,유학성국방위원장·노태우 전대통령의 동서 금진호의원,이원조의원 등이 앉아있었을 것이다.
참석자들은 지구당위원 자리를 놓고 경북고 선후배간의 갈등이 표면화됐으니 내심 씁쓸한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했다. 정·문씨의 고교후배이자 지역구가 붙어있는(서을) 강재섭대변인이 대회에 참석하지 않은것도 이같은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았다.
한 참석자가 독백처럼 말했다. 『TK가 「터지고 깨지는」 말의 준말이라더니….』
한 민자당의원은 정 의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미 육사동기생 두명이 대통령을 했고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대표적 군출신인 그가 굳이 후배를 밀치고 지구당위원장을 맡아야 하는가. 13대때는 의원직을 내놓는 고통을 당했지만 14대 총선 승리로 명예는 회복된 것 아닌가. 선배답게 후배들을 키워주는 자세를 취했다면 지역사회의 평가가 훨씬 달라졌을 것이다.』
다른 한 의원은 문 전위원장에 대해서도 『기다리면 또 위원장을 맡을수도 있는데 선배한테 너무 노골적으로 대항한다』고 시큰둥했다.
대구의 분위기는 「정권을 내놓은지 얼마나 된다고 벌써 하찮은 지구당위원장자리 하나를 놓고 이러느냐」는 허탈감 같은 것이 깔려있다.
김종필대표는 치사에서 『정 의원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육군대장에다 참모총장·내무장관·국방장관을 거쳤다』고 치켜세웠다.
행사가 끝나고 자축파티장인 지구당사무실에 김 대표와 정 의원 등이 도착했을 무렵 지구당관계자들이 아직 대구에는 배달되지 않은 이날자 중앙일보 「정 의원이 광주사태 진압작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기사를 보고했다.
파티장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모두 당시 특전사령관이었던 정 의원에게 또다시 정치파도가 몰려오는 것 아닌가 예감했다.
정 의원은 『전교사 대령출신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 같다. 나는 광주사태때 그 사람 주장처럼 그렇게 오래 광주에 머무르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정 의원은 물론 김 대표를 배웅하기 위해 대구공항에 모였던 많은 대구·경북출신 의원들은 별로 웃고싶지 않은 표정들이었다.<대구=이상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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