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들꽃을”고사리손 정성/「서울의 산골」김포 오곡국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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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카네이션 못구해 민들레·철쭉으로/방문금지된 학부모 “밥한끼 해드려왔는데…”
『카네이션 대신 들꽃을.』
스승의 날을 맞은 서울오곡국교(교장 장인식)선생님들의 가슴에는 학생들이 들녘을 누비며 고사리손으로 엮어만든 민들레와 철쭉꽃,그리고 들풀로 엮어진 꽃송이가 빛나고 있다.
서울의 서쪽끝,김포국제공항 활주로 끝자락을 돌아 벌판을 가로질러 신문도 우편으로 배달되는 「서울의 낙도」인 오곡동.
한학년에 1개반,한학급에 15∼23명씩 전학년 모두 합해봐야 1백20명에 불과한 분교수준(?) 오곡국교의 15일 스승의 날이다.
『책에서 본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지만 구할 수가 없어서요….』
노란 민들레꽃과 분홍빛 철쭉꽃을 예쁘게 가다듬은 은영이(9세·3학년)는 부끄러운 눈치다.
『별로 잘해준 것도 없어 오히려 미안한데….』
활짝 웃는 이재천교사(45)는 『내가 만든 꽃을 달아야한다』고 떼쓰는 16명(학급전원)모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어 고민이다.
학부모의 모습은 그림자도 없다.
『아빠 엄마는 모두 들에 나가셨어요.』
근섭이(9)네처럼 농사짓는 집이 7명이고,나머지 9명의 부모는 대부분 「하루벌이」.
『촌지요…. 글쎄,학부모의 70%이상이 사글세방이고 끼니를 거르는 아이도 제법 있는것 같은데….』
지난해 3월 부임한 이교사에게 있어 최근 교육계의 자정바람과 이 과정에서 일고있는 「촌지배격운동」은 먼나라 이야기다.
학부모들이 『집이나 보라』며 아이들을 붙들어 두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 따름이다.
장교장은 『작년까지는 이 학교의 스승의 날도 푸짐(?)했었다』고 했다. 50명이 채 안되는 학부모들중 시간이 있는 몇몇이 손수 농사지은 쌀로 밥짓고,텃밭 푸성귀로 반찬 만들어 10명의 교사들이 교무실안에서 맛있는 점심 한끼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 올해는 교육청의 「어떠한 형태의 향응도 금지」라는 서슬퍼런 공문에 눌려 사양하고 말았다. 학부형들의 『시내처럼 진수성찬이 아니어서 그러느냐』는 원망섞인 항의를 받으면서. 장교장은 『아직도 대다수 교사들은 어려운 가운데 긍지와 보람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모래가 없어 질척거리는 운동장옆 채소밭을 향했다.
오늘은 스승의 날. 틈틈이 손수 재배한 알타리무·파·상추등을 다듬어 선생님들이 귀가할때 안겨주기 위해서다.<박종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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