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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5·18」 이렇게 본다(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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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군부독재규명이 개혁의 출발
12·12사태와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인식과 대처는 김영삼정부에 있어서는 하나의 선택의 기로가 아닐 수 없다. 사정개혁을 앞세워 과거 군부 권위주의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문민정부임을 자임해왔던 김영삼정부는 최근 12·12사태와 광주항쟁에 대한 어려운 결단을 강요받아왔다. 오늘의 부정과 부패와 비리가 그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있는 12·12쿠데타를 역사적 진실에 보다 가깝게 「쿠테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한 대통령의 발표는 역사적 발언으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이는 실질적 민주개혁이 현재의 사정개혁의 수준이 아니라 지난 30년간의 군부 권위주의 체제가 만들어 놓은 부정의와 비리와 부패구조에 대한 전면적 청산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그러하다.
우리는 오늘의 사정개혁을 지켜보면서 폭력성에 기초하였던 정권이 사회전체를 궤멸의 벼랑으로 몰아넣을 정도로까지 부정과 부패를 적체시켜왔음을 보게 된다.
그동안 진행되어온 개혁조치에 대하여 광범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서 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가능했던 것도 구체제의 부정부패 깊이·크기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위기의식에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정부의 사정개혁은 커다란 반향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개혁은 사실상 인기에 의존하거나,아직 구체제가 남겨놓은 부패구조의 일각을 허무는 것 이상이 아니었다. 다만 이러한 정도의 사정개혁에 의해 드러난 부패구조조차 30여년 군부독재가 남겨놓은 적폐물의 빙산의 일각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면서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가 12·12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한 대통령의 발언을 중요시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민주개혁의 첫단계는 12·12사태로부터 발원하는 군부권위주의의 성립과 유지과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러한 독재와 부패구조의 핵심에 있었던 인물들과 이들이 운영했던 정부기구들의 역할과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진실은 모두 흑막에 가려져 왔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신군부의 쿠데타를 규명하고 그 사태를 올바르게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것은 사태에 연루된 인물들을 단죄하고자 하는 것이라기보다 민주개혁은 바로 이 군부권위주의가 만들어놓은 그 부정과 부패위에 구축되어있는 구조를 개혁하고 혁파하는 것과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의 혁파와 개혁없이 민주개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한 개혁은 핵심을 우회하여 적당한 선에서 홍보효과만을 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민주개혁을 제도화하는 것과는 더욱 거리가 멀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수준에서의 개혁은 다만 구체제의 부정비리를 은폐하고 개혁의 이름으로 사면해주는 것 이상일 수 없다. 이 실질적 개혁의 출발점이 군부권위주의하에서 저질러진 핵심적 사태에 대한 실체의 규명과 성격규정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12·12쿠데타와 광주에 관한 진상규명과 성격규정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민주개혁의 과정이 어떤 일정한 단계에서 역진되어서는 안된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개혁과 민주화는 누적적이며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어떤 하나의 사태를 계기로 역진될 경우 우리는 다시 과거의 부정의와 부패가 오히려 더 큰 구조를 띠고 재현됨을 보아왔다. 가깝게는 89년의 공안정국이 대표적이다. 89년 봄 이른바 공안정국은 87년부터의 민주화과정에 제동을 걸고 이를 역진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보다 더 큰 수구권력 엘리트의 권력독점과 부패·비리를 엄청나게 더 깊고 넓게 확대시켰던 사태를 가능하게 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과거군부독재의 핵심적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데 있어서의 어려움 때문이다.
이러한 핵심적 문제에 대한 실질적 혁파없이 진행되는 민주화를 우리가 실질적 민주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적 지지하에 진행되는 김영삼정부의 많은 개혁적 민주화조치에 대해 커다란 지지를 보내면서도 이에 대해 큰 우려와 한계를 인식하게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2·12와 광주의 경우에서 보다시피 핵심적 사안은 선언자체도 물론 중요하지만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늘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핵심적인 문제는 바로 오늘의 구조적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그 해결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거의 불행한 사태에 대한 보복적·응징적 차원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된다. 실질적 수준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광주문제에의 해결은 불가피하다.
12·12사태가 전국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인만큼 광주항쟁도 전국적 보편적 수준에서 인식되고 처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광주문제의 지역화야말로 민주적 개혁조치에 있어 넘어야할 하나의 핵심적 문제인 지역문제의 치유에 있어 사태의 역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구축은 위로부터의 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 앞에서 지적한 민주화의 역진은 밑으로부터의 요구를 수용함에 의해서만이 극복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는 30년 군부독재가 남겨놓은 부패구조를 넘어 실질적 민주개혁으로까지는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최장집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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