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K2』를 보고 외경의 히말라야 실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영화를 보는 동안 히말라야의 설봉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82년 마칼루(8,481m)등정을 시작으로 히말라야를 누빈지 10년여.
그동안 마나슬루(8,156m)와 에베레스트(8,848m), 로체(8,516m)를 올랐으며 올해엔 중국령 에베레스트 초모랑마에 다녀왔다.
90년엔 끝없는 눈과 얼음의 평원 북극을 원정했었다.
K2(8,611m)는 히말라야 제2의 고봉이다.
스크린으로 보는 산은 아름다웠다. 칼날처럼 치솟은 거대한 수직의 흰벽, 구름과 더불어 아득히 펼쳐진 설릉의 대장관은 보는 이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장려한 광경이 남모를 아픔으로 다가왔다. 수백길 낭떠러지로 입을 벌린 눈밭의 크리배스, 혼신의 힘을 다해 피켈을 찍고 또 찍어 올라가도 끝을 모를 빙벽, 수많은 대포가 한꺼번에 터지듯 온산을 뒤흔들던 눈사태, 기압·산소가 평지의 3분의1도 안되는 정상 부근의 설릉.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눈보라 몰아치는 얼음의 벽에 매달려 죽음과 맞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나는 간절히 기도했었다. 가족들이 애타게 보고팠고 산 친구들의 얼굴이 어른거렸다.
영화는 그런 나의 경험을 재현하고 있었다. 죽음 직전에 몰린 한 주인공이 아내의 환영을 보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오른 힐러리는『그 위험한 산에 왜 가느냐』는 물음에『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고 대답했다.
그렇다. 산은 늘 거기 있고 변하는 것은 나를 포함한 세상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세속의 가치에 짓눌려 하찮은 일에 웃고 기뻐하며 또한 하찮은 일에 슬퍼하고 분노한다.
그것은 인간이 가진 위대한 정신, 곧 용기와 모험심, 사랑과 우정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극장문을 나서며 8천m급 고봉 14개를 전부 등정한 라인홀트 메스너의 말이 생각났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그러나 인간은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순백의 히말라야야말로 죽음을 맞이하기엔 최적의 장소가 아니겠는가.』
산은 최고의 도장이다.【허영호<산악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