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개혁물갈이/김영배(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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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정부의 개혁정책이 시작된지 고작 2개월 남짓한데 벌써 개혁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소리나 조바심들이 은근히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불만의 가장 단적인 예는 개혁도 좋고 사정도 필요하지만 모두가 「안먹고 안한다」는 식으로 보신이나 하니 경제고 뭐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엔 차라리 먹더라도 돌아가기는 했는데 요즘 같이 안먹고 안할 바에야 차라리 좀 먹더라도 뭔가 돌아가야 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뭔가 일을 좀 하려고 하면 관청에서는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나 따지며 세월 다 보낸다는 것이 이들의 불만이다.
○곳곳서 보신주의 판쳐
그나마 이런 개혁바람은 서울의 중앙부서에서나 좀 불고 있는 것이지 지방에선,그리고 관청의 말단에선 그저 열손 잡고 강건너 불보듯 쳐다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개혁이 개구리 뜀뛰기식으로 앞을 내다볼 수가 없어 그런 풍토를 더욱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면 사회 저명인사라고 존숭받던 아무개가 갑자기 쇠고랑차고 나타나고,그로 인해 줄줄이 목이 날아가고 구속사태가 일어나니 불안해서 차라리 가만 앉아 있는게 낫다는 식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현정부가 개혁의 지속성을 계속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의 성격을 종잡을 수 없도록 하는 불가측적인 사정과 권력 행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장 빈번히 지적된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개혁의 공평성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과거 보수야당이었던 민자당의 민주계가 반드시 「개혁적」인 인물들만이 아닌 것은 사실이고 이로 인해 누가 봐도 「비개혁적」인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는 희화적 장면들이 곧잘 나타나기도 한다 . 그러나 어쨌든 야당으로 고생한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구시대의 명확한 유물로 치부되던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TV·신문을 통해 「개혁동참」을 떠들어 대도록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혁의 의미를 희석시키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전장에서 실석을 함께 무릅쓴 개국공신일지라도 부정을 저지르면 비록 일신의 부귀는 보장할망정 공직만큼은 박탈했던 『정권정요』의 고사를 굳이 옮기지 않더라도 공사의 구분은 명확해야 공정성이 확보되는 법이다.
김영삼대통령이 그의 가장 가까운 한 사람을 등용하면서 『부정한 돈을 1원이라도 먹으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자를 수밖에 없다』는 다짐을 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현정부의 결의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그런 원칙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사정원칙 공평적용을
또 한가지는 정부의 권력이 공적으로 행사되고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현정부의 권력 주체가 누구인지에 관해 억측이 구구하고,정부 밖에도 실세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소리가 여전히 들려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사적인 권력의 행사모습에 익숙해 있고,그로인해 권력의 향방에 관한 지나친 추측들에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있다. 때문에 권력의 행사는 청와대를 중심으로,행정부안에서 보다 공식적이고 가측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구심들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김영삼정부의 개혁구조가 독특한데서도 비롯되는 것일는지 모른다. 실제로 과거의 누습에 젖어있는 행정부의 조직과 부패의 고리에 가장 밀접하게 엮여있는 민자당조직,그 어디를 들여다 봐도 개혁적인 구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이 진행되는 것은 위에서의 개혁의지와 이에 대한 국민적 지지 뿐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개혁은 자칫 「고립적인 개혁」이 될 소지가 없지 않다.
○개혁지속 확신 심어야
아마도 말단 관료들이,일부 기업들이 안먹고 안하면서 관망하는 것도 그러한 연유일는지 모른다.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이들을 개혁마인드로 교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안먹고도 하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혁이 김영삼정부만의 과제도 아니고 앞으로 선진도약을 위해,경제의 진정한 회생을 위해 김영삼정부 이후로도 계속된다는 확실한 전망을 심어줘야한다.
의식의 개혁물갈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개혁의 세력화를 위해 새로운 개혁세력을 발탁,등장시키는 정치권의 물갈이가 서서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통일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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