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법조윤리협의회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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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개정된 변호사법에 따라 7월 27일 법조윤리 확립과 법조비리 감시 기능을 주요 업무로 하는 법조윤리협의회가 출범했다. 법조윤리협의회는 상시적인 독립기구로서 대표적인 법조비리로 거론돼 온 ‘전관예우’ 문제와 사건브로커를 통한 사건 수임을 방지함으로써 법조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돌이켜 보면 20년이 넘도록 변호사로 일해 오면서 의뢰인들로부터 “담당검사를 잘 아느냐” “담당판사와는 어떤 사이냐”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곤혹스러웠다. 그런 것은 사건 해결이나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의뢰인들은 쉽게 납득하려 하지 않았다. 이런 법조 현실이 너무 안타까워 법조실무를 사실대로 묘사해 논의의 장을 마련하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치기에서 15년 전 『하얀나라 까만나라』라는 소설을 썼다가 선배·동료들한테 크게 질책을 당한 경험도 있어 법조윤리협의회의 출범에 남다른 감회가 있다.

 우리의 법조 풍토가 이렇게 된 데에는 물론 법조인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에도 고위 법관에서 퇴직한 변호사들이 선거법 위반 사건을 싹쓸이했다는 기사가 있었는가 하면 어느 재벌이 관련된 사건은 국민의 시선과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거꾸로 담당 재판부와 아무 관련이 없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한다.

 이처럼 전관예우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법조를 비하하는 유행어를 만들어 낼 만큼 국민의 법조불신에 대한 가장 큰 원인이며 법조인 스스로의 자긍심을 훼손하는 해악의 근원이다. 또한 사건브로커에 의한 사건수임은 법조시장을 왜곡해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는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므로 자신의 신체와 재산이 관련된 일이라면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고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 온 우리가 계약보다는 정을 앞세우고, 합리성보다는 혈연이나 지연·학연에 의한 문제 해결을 우선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것이 계약과 합리성에 기초를 둔 다민족국가인 서구사회와 다른 점이나 이는 민족성의 차이라기보다는 전통과 문화의 차이라고 할 것이다.

 이제 지구촌이라는 단어는 진부하게까지 느껴질 만큼 세계는 개방화·단일화의 길로 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미 법률시장 개방에 대한 로드맵을 확정해 놓았고 로스쿨법도 통과돼 상당수 비법학 전공자의 변호사 배출이 예정돼 있다. 전통과 문화가 다른 곳에서 교육받고 법조실무를 해 온 외국 변호사들과, 법학을 전공하지 않고 로스쿨에서의 전문실무교육만을 받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변호사들이 공존하는 법조계는 분명 우리 모두에게 또 하나의 도전일 것이다.

 구성원이 다양해진 만큼 법조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따라서 법조계의 오랜 과제인 전관예우와 사건브로커 문제를 더 이상 법조인이나 사건당사자들의 도덕이나 윤리, 또는 법원·검찰이나 변호사협회의 자정노력에만 맡기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9인 협의체로서 직무의 독립성이 보장된 법조윤리협의회의 출범은 시의적절하고 법조윤리 확립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조윤리협의회에서는 우선 공직 퇴임 변호사나 사건을 과다 수임하는 특정 변호사의 수임자료 등을 검토하는 업무를 하겠지만 나아가 법조윤리의 확립을 위한 법령·제도 및 정책에 대한 협의, 법조윤리 실태 분석 및 법조윤리 위반행위에 대한 대책 수립 등도 그 주요한 업무다.

 급변하는 법조환경에서 이번 법조윤리협의회의 출범이 법조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

윤상일 변호사·대한변협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