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NPT탈퇴선언으로 본「김정일 외교」 후계체제 정통성 확보 주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김정일 비서의 외교는 「전격전」형식이다. 김 비서가 외교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최근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다. 그런 점에서 아직 판단하기에 이르기는 하나 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다소 김 비서 다운 외교모양새가 드러나고 있다.
남한측 외무부 관리의 말을 들으면 유엔을 비롯해 외국에 나가있던 북한 대사들은 3월12일 NPT조약을 탈퇴하는 날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 방송이 청취되고 외국통신을 통해 세계각국으로 이 소식이 전해졌지만 북한대사관중 어느 한 곳도 이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

<대사들도 전혀 몰라>
북한은 김 비서의 이번 조치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미국의 조종에 의해 북한에 가해온 부당한 간섭을 일격에 타개할 수 있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사실 북한은 핵 문제와 관련해 국제적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미 다 써먹은 NPT체제 존중문제를 다시 협상카드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는 상당치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북한이 핵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는 북한과 고위접촉을 할 수 없다던 미국은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고위접촉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미 입장을 조정했다. 또 한국과 미국은 당연시 돼온 이두가지를 전제로 팀스피리트훈련을 조정할 수 있다느니 남한 내 미군기지도 동시에 사찰 할 수 있다느니 하는 유화책을 내놓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북한에 대해 먼저 핵 공격을 하지 않으며, 경제협력을 할 수 있다는 등 화려한 선물꾸러미를 늘어놓고 있다.
핵 문제 외에도 화학무기, 미사일, 인권문제 등 잇따라 제기될 서방의 압력을 일단 주춤하게 만든 것도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다 어쩌면 김 비서에게는 이런 단기 차익을 거두었다는 내부선전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에 대해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국제 압력이 거세지만 이것도 북한이 과거 상태로 돌아가는 것으로 없어질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은 자기코앞만 따지는 계산법이다.
북한은 핵 문제를 걸고 이러저러한 것들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 가장 아쉬운 것은 김 비서 체제를 안전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김 비서 시대로 넘어가는 기간의 북한 외교성격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순방외교 대폭강화>
북한이 외교를 담당하던 김용순 비서에게 대남 정책을 담당토록 한 것도 이러한 의도다.
미국·일본을 비롯한 서구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북한의 존립을 보장받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북한이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의 2+4구상에 호의를 보인 것도 그렇다. 지난달 7일 김주석이 제시한 10대 강령도 북침과 남침, 승공과 적화에 대한 우려를 다같이 없애고 서로의 주의주장을 존중하는 중립국가를 만들자고 제의해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최근 워싱턴에서 북한의 고위급 학자를 만난 한 외교관은 그들이 매우 「풀이 죽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 학자는 10대 강령을 강조하면서 평화공존의 입장에 서 있었다고 말했다.
남한이나 중국도 북한이 갑자기 무너지는 것을 꺼리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도 최근 동북아지역 다자 안보체제 구축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것이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최근 태도는 평화공존으로 가는 길을 막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2+4회담」호의>
북한은 이처럼 가장 시급한 것이 김정일 체제의 정통성을 확보하는 것인 만큼 대 서방, 대 유엔외교 등에 어느 때보다 힘을 쏟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표 대결의 필요가 줄어들어 대신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는 거점공관을 운영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NPT탈퇴 전후에 보인 것처럼 순방외교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경제외교다. 연초 순방외교사절단이 중점적으로 제기한 것도 NPT탈퇴의 정당성과 경제협력문제였다. 이제까지 북한이 의존해온 사회주의 경제권이 붕괴되고, 중국마저 구상무역을 줄일 것을 요구해 외화벌이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 북한 전문가는 핵문제가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또 경제개방과 관련한「깜짝쇼」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북한 외교의 변화는 김 비서의 스타일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주변환경의 변화에 큰 요인이 있는 만큼 김 비서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이 미국과의 접촉을 이용해 현 상황을 풀어 가는 방식에서 독특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김진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