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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비리」 죽음으로 인책/베레고부아 불 전총리 왜 자살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억여원 무이자대출 드러나 고민/총선때 사회당 대참패후 자책감도
페에르 베레고부아 전프랑스 총리(67)의 충격적 자살은 사회당의 총선 참패와 개인적 금전거래 스캔들이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베레고부아 전총리는 1일 자신이 시장으로 재직중인 프랑스 중부 느베르시교외의 한 산책로에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쏴 자살을 기도한지 네시간만에 절명했다. 그는 자살기도 직후 함께 있던 경호원에 의해 인근 병원을 거쳐 헬리콥터로 파리의 발드 그라스 군병원으로 이송되던중 숨졌다.
그러나 총리에서 물러난지 한달만에 목숨을 끊은데 대해선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지난 3월말 프랑스총선에서 사회당은 우파연합에 밀려 2백60석이던 의석수가 52석으로 대폭 줄어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베레고부아 전총리가 이러한 사태를 막지 못한데 대해 스스로 심한 자책과 회의를 느꼈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선거운동이 한창인 상황에서 터진 자신의 금전거래 스캔들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개인으로부터 그가 1백만프랑(한화 1억4천5백만원)을 무이자로 빌려 파리시내에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쓴 사실이 사회당의 정치자금 조달 비리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은 독일 점령 치하에서 레지스탕스운동을 함께 한 인연으로 그와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절친한 로제 파트리스 플라(89년 사망)라는 사업가. 베레고부아는 『내가 아파트 구입 자금이 모자라 고민하는 것을 알고 단지 개인적 친분에서 그가 호의를 베풀었고 그 호의를 받아들인 것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더구나 그 돈은 플라가 죽고나서 그 가족들에게 절반은 수표로,나머지 절반은 고서·고가구 등 현물로 이미 다 갚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기업 인수와 관련한 내부자 거래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혐의로 84년 플라가 기소됐을 다시 그가 재무장관이었다는 점에서 1백만프랑 무이자제공 사실을 이와 연결시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특히 50만프랑을 현물로 갚았다면서 그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됐다.
우크라이나 이민 2세로 중학교만 졸업하고 선반공·철도 노동자 등을 전전한 뒤 독학으로 총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인 그는 매우 정직하고 검소하며 청렴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왔다.
지난해 4월 에디트 크레송의 뒤를 이어 총리로 취임하면서도 그는 정치자금과 관련된 부패척결을 내각의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로 천명할 만큼 「깨끗한 정치」에 큰 비중을 두어왔다.
그러나 금전거래 스캔들이 알려지면서 「체험적 사회주의자」로서의 그의 정치적 이미지는 크게 손상을 입었다.
조용하면서 외유내강형의 성격인 베레고부아 전총리가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다가 끝내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한 것으로 일단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당의 패배가 자기 혼자 책임질 성격의 문제가 아니며 금전거래 또한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닌 이상 이런 이유로 목숨까지 끊을 수 있겠느냐는 점에서 그의 자살은 숱한 의문을 남기고 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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