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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우산 속 북적대는 상념들을 보았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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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년 독학 끝에 장원 김윤화씨

“우산 속 북적대는 상념들을 보았지요”

대전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김윤화(43·사진)씨는 장마철인 6월 중순 우산을 들고 회사 문을 나섰다. 아침 저녁 출퇴근을 반복하는 여느 샐러리맨의 일상과 다를 바 없었다. 덥고 습한 날씨에 우산 하나씩 들고 종종걸음 치는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이런저런 상념이 떠올랐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날씨의 반복이다. 안 맞는 일기예보, 안 풀리는 경기, 휴가철인데도 흥은 안 나고 어딘가 급하게 향하는 마음을 시조로 표현하고 싶었다”
 
중앙시조백일장 7월 장원을 차지한 ‘장마전선’은 바로 이 순간을 말하고 있다. 심사위원들도 “언뜻 보면 단순한 스케치에 머물고 있는 것 같지만 새겨 읽는 중 자연스럽게 의미를 되뇌게 한다”고 평했다.

김씨는 당선소감을 묻자 “시조라 하면 ‘고시조’를 연상했는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더라. 읽으면 읽을수록 현대적 감칠맛이 나고 뭔가 긴장감을 준다”며 시조 예찬론부터 폈다. 그 ‘현대적 감칠맛’은 일상의 단상을 절제된 형식에 담아내는 것으로 살렸다.
 
시조문학의 위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시조로 등단한 이들도 시·동화 등으로 갈아타는 추세다. 김씨의 경우는 반대다. “고교 때부터 자유시를 썼는데 주변에서 ‘당신 시에는 시조 같은 분위기가 난다’며 시조 쓰기를 권해 독학한 것이 2년째”라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서적을 통해 관련 자료를 구해 읽고 혼자 쓰고 혼자 생각해왔다. 이번에도 “한 달 동안 혼자 줄이고 다듬어 내놓은 시조가 장원을 차지하니 뜻밖이다”라며 기뻐했다.
 
김씨는 “시조는 짧은 형식에 모든 것을 담으려니 쓰기가 아주 힘들다. 그러나 그게 마치 나 자신과 싸워 이기는 듯한 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일상 속에서 와 닿는 것들을 소재 삼아 정형시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현대인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시조를 쓰겠습니다.”

권근영 기자

심사위원 한마디
언뜻 보면 단순한 스케치 … 새겨 읽을수록 맛이나

시조의 3장 6구 12마디의 형식은 부단히 반복을 요구한다. 이것을 자기만의 동작(가락)으로 체화할 수 있을 때 시적 성취가 이뤄진다. 단,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감동을 줄 수 있다. 예술적·언어적 감동은 달리 말해 ‘맛’이다. 시는 깊은 맛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초심자에게는 퍽이나 어려운 주문이다. 그렇지만 각고의 노력 없이 정형시인 시조를 쓰려고 하는 것은 안이한 태도다. 모름지기 자신의 삶과 세계를 시조로 노래하기 원한다면 지루함을 넘어 반복의 묘미를 깨우쳐야 한다.

투고자들에게 새삼스럽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 난은 ‘중앙시조백일장’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을 받고 있다. 먼저 시조에 대한 기초 지식을 더 쌓기를 바란다. 특히 형식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한 방법으로 시조의 본령인 단시조 쓰기에 힘을 기울였으면 한다. 45자 안팎의 한 수(首) 안에서 다채로운 창작을 경험하다 되면 시조의 가치를 제대로 체득하게 될 것이다.

이 달에도 형식을 지키면서 시인의 복합적 시선과 사물 해석의 새로움 그리고 언어의 세련됨을 얼마나 잘 표출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읽었다. 장원은 김윤화씨의 ‘장마전선’이 차지했다. 언뜻 단순한 스케치에 머물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새겨 읽는 중에 자연스럽게 의미를 되뇌게 한다. 메시지를 내장하고 있되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하고 있는 경지이다. ‘습기 찬 우듬지너머 하루치 그림자 진다’라든가, ‘이동성 저기압에 전할 말 잔뜩 머금은/침묵의 장마전선만 내내 조바심친다’라는 대목이 주는 울림은 삶의 의미를 심화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차상인 강경훈씨의 ‘분재’는 세 수 한 편으로 나무랄 데 없는 작품이다. ‘아무래도’를 첫 수 첫머리에 놓은 것은 범수가 아님을 보여주는 한 예다. 셋째 수 또한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하인 박미자씨의 ‘지갑 속의 램프’는 제목이 참신하고 상징적이다. 원래 네 수였는데 의미의 끊어짐을 무릅쓰고 뒤의 두 수를 삭제했다. 상식적이고 승화되지 못한 표현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좋은 시조가 되는지 천착에 천착을 더할 일이다. 참고로 김병문·박신산·김태영·조민희·고지연·김지송씨 등이 끝까지 논의됐음을 밝힌다.

<심사위원:이정환·이승은>

◆응모안내= 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매달 말 발표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매달 장원·차상·차하에 뽑힌 분을 대상으로 12월 연말장원을 가립니다. 연말장원은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당선자(등단자격 부여)의 영광을 차지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겐 각각 10만·7만·5만원의 원고료와 함께 『중앙시조대상 수상작품집』(책만드는집)을 보내드립니다. 전화번호를 꼭 적어주세요.

◆접수처=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10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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