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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개혁」을 생각하며…/서광선(종교인 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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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양,어제 그대와의 대화는 충격적이었어. 그래 학교 그만 두어야 하겠다던 결심은 변함이 없는지 궁금하군. 한 교수에게 학생이 찾아와 학교를 그만 두겠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비판이고 배격이고 배신으로 여겨지니 나에게는 좌절과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지.
신문에서는 대학이 수많은 학생들을 부정입학시켰다고 야단들이고 대학입시문제를 학부모에게 팔아 넘기는 엄청난 사건을 폭로하고 있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권력을 가진 어른들이 부동산투기를 하고 대학을 장삿속으로 생각해 부정입학의 대가로 돈을 모으고 건물을 짓고하는 비리들이 우리 모두를 놀라게하고 있지. 철석같이 믿으라고 하던 나라의 안전과 국방을 맡은 장성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 있었다는 보도는 이 나라의 상층구조가 얼마나 허약한가 하는 것을 드러내놓고 있는 것 같아. 나도 자네처럼 나라를 그만 두고 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섬에 도망이라도 가고 싶어졌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야. 지금 누가 잘못했다고 돌을 던질만한 힘조차 없어진것 같애.
○모두에게 충격준 비리
대학을 개혁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지.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대학생을 선발하는 방법부터 시작하지. 지원생은 많고 입학정원은 많지 않고 결국 시험을 봐야 한다는 거지. 여태까지의 시험방법을 개혁한다는 것이 지원생의 수학능력은 나라에서 만든 시험으로 측정하고,학생의 학업성취도는 고등학교 성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쓰자는 것이지. 이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대학이 스스로 만든 시험문제를 가지고 시험을 치르게 한다는 것이 1994년 봄에 들어오게되는 학생들의 선발 방법이지. 나는 우리 대학이 이른바 「대학별 본고사」를 시행하지 않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한 대학이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입시생을 관리하고 답안을 채점하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학생들은 잘 모를거야. 한 사립대가 입시 한번 치르는데 소요되는 경비를 5억원에서 7억원으로 예산하고 있을 정도지. 그리고 대학교수가 입시관리에 투입해야 할 시간은 엄청난 낭비라고 생각해. 그러나 그러한 인적·물적 희생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가져온다면 해야 할 일이지만 사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뤄 최상의 방법이 아닌 것을 가지고 낭비 해온 것 같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참교육이 되기 위해서도 대학 입시제도는 간소화되고 합리화되어야 한다고 상각해.
○창의력 말살하는 입시
여태까지의 입시제도는 암기력과 인내심,적응력과 순응력을 테스트하는 것 이상이 아니었어. 권위에 순응할 수 있고 사회 기득권과 제도화된 가치에 대해 무조건 복종하도록 길들여진 인간들만이 대학에 들어올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는 생각이었지. 개인의 창의력이나 사고력,언어적·예술적 표현의 능력,사회의식이라든가 역사의식 같은 것은 오히려 배격되는 인간 측정의 틀을 가지고 대학생을 선발해 온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지. 어떤 교수의 말대로 대학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오고 있는 셈이지. 미안하지만 그대같이 학력고사성적 3백점을 웃도는 사람은 사실 대학에서 창의적인 연구라든가 학습에 적당하지 않다고 해야할거야 자네같은 학생을 받아들이려면,그리고 자네같은 학생이 대학에서 행복하려면 암기력으로 버텨 내는 타율적인 교육을 해야 하는데 우선 대학은 그런 곳이 아니야. 그리고 자네같은 학생도 그런 대학 입시교육의 연장같은 대학교육을 원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단 말이야. 대학이 대학다워야 하고 대학생다운 대학생을 선발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애. 공부밖에 모르고 학교점수가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만이 대학에 들어올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야. 세상을 알고,인생을 고민하고,역사와 인간에 대한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찬 왕성한 젊은이를 대학은 원하고 있단 말이야.
나는 자네가 바로 이상적인 우리대학이 원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자네 문제는 대학이 그 지적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어. 그래서 대학은 개혁되어야 하는데 그 개혁을 정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말일세. 우선 교수의 수가 적어도 지금의 배는 증가해야 해. 아니면 학생의 수가 지금의 절반으로 줄어야 해. 그리고 시설의 질적 향상이 필요하지. 그러려면 학교의 재정이 확장되어야 하는데,그 재원은 학생의 주머니가 대부분이야. 학생의 등록금을 인상하든지,나라에서 보조를 받든지 해야 해.나라는 국방비와 사회복지비용 때문에 대학교육에 투자할 돈이 없다는 거야. 그렇다면 사회유지들의 희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세제 등 여러가지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잘 인식이 안돼 있지. 자기자식이 실력으로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알고서야 비로소 「기여 입학제」를 논하는 사회풍토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대학 투자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지.
우리 남과 북이 평화 공존하고 공영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면 GNP5%이상의 국방비가 필요없어지면서 그 예산을 대학교육에 돌릴 수 있지않겠나 희망해보는 것이야. 대학 예산의 15%에서 20%의 부분을 국고에서 지원받으면 학생들의 등록금에만 의존했던 대학교육이 훨씬 편해질 수 있지 않겠나. 그러나 그렇게 될때 대학과 교육부가 얼마나 양심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 있을지,그리고 교육부의 불필요한 간섭과 통제를 어떻게 할것인지도 걱정이지. 그것도 우리 정치가 민주화되고 안정되면서 이른바 교육비리라는 것도 청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희망을 걸고 있어.
○방관말고 지혜모아야
우선 너나 내가 대학을 떠난다는 것은 대학의 개혁을 위해 도움이 안된다고 봐. 우리는 지금 도망갈 수 없단 말이야.
대학 안에서의 개혁,대학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위해서도 오늘의 우리대학에 대한 비판세력이 힘을 합하고 지혜를 모아야 될 때인줄 믿기 때문이지.
1993년 4월27일
라일락 향기로운 이대컴퍼스에서<목사·이대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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