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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치훈의 「이창호 론」"대단하지만 아직 약해 잇따른 승리 성장 방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승복할수 있는 패배가 있고 승복할수 없는 패배가 있다. 조치훈9단은 동양증권배 세계바둑대회 결승에서 이창호6단에게 2연패했으나 그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22일의 1국에서 역전패 당한 뒤 조9단은 『이창호는 아직 약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했다. 겸손한 조치훈의 이례적 발언이었다.
『이창호는 대단하지만 아직 약한건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자꾸 이기면 곤란합니다. 바둑엔 아주 많은것이 있는데 참고 견디는 것만으로 이기면 승부방식이 고정될 위험이 있습니다.』 『기보를 볼때 이창호는 조훈현9단보다 약한데 승부는 이6단이 이깁니다. 이6단은 더 성장해야하는데 거듭되는 승리가 성장을 막을지도 모릅니다. 조9단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조9단은 이6단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 열정적으로 말했다. 그의 거듭되는 전제는 이6단이 아직 약하다는 것이고, 결론은 조9단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었다. 조9단은 동양증권배에서 자신이 패배하리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듯 보였다. 조훈현9단은 곁에서 미소지을뿐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6단 바둑은 거꾸로예요. 왜 늦게 배우는 끝내기가 강하고 초반이 약하지요?』
이6단의 바둑은 초반에 큰 구멍이 있다. 종반에 자신있어 초반에 소극적으로 최선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이 노출된 약점 때문에 최근 주훈현·서봉수·유창혁등은 초반 급습으로 성공을 거두곤 한다. 이6단과 처음 승부바둑을둔 조9단도 그걸 간파하고 『이창호바둑이 승부일도이며 그건 위험하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던 것이다.
동양증권배 제2국은 바둑에서 「끈기」가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 한판이었다. 장구한 시간을 기척도 없이 기다리는 이창호의 무시무시한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난 한판이기도 했다. 종반 거듭된 실수 끝에「반집」으로 패퇴한 조 9단은 약간은 당황했고 약간은 명랑했다.
『이창호바둑이 어떤가』『아직도 약하다고 생각하는가』고 묻자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내 바둑은 투혼일도였다. 훗날 운명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창호바둑은 승부에 강하나 그건 바둑의 일부다. 패배는 승복할수 없다.』
조치훈의 장인적 안목에서 이6단은 강하지 않다. 그러나 이6단의 바둑은 기보로 볼때와 마주앉을 때의 느낌이 천양지차다. 이6단은 상대에게 결코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다. 어둡고 형체가 없어 이것이 상대에게 강한 압박감을 준다. 혼돈이면서도 명경지수와 같으니 이율배반이요 불가사의다. 이 점만은 조9단도 부인하지 않았다.
조치훈9단·조훈현9단·이창호6단은 차례로 한국바둑을 중흥시킨 3두마차다. 조9단과 조9단은 위기에 처해있으나 이6단의 실력에 승복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세대교체때 이런일은 없었다.
바로 이점때문에 또한번의 세대교체가 걸린 이들의 애정어린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른다. <박치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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