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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식탁서 정치 요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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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노무현 대통령의 점심.저녁 식사 자리가 중요한 정치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혹자는 盧대통령의 '밥 정치'라 부른다. 대상은 주로 열린우리당 사람들이나 오랫동안 정치를 함께해 온 측근.동지들이다. 식사에 누구를 초청했고, 무슨 얘기가 오갔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속엔 묘한 원칙과 기류가 느껴진다. 盧대통령 특유의 정치 스타일이 식탁 위.아래로 넘나들고 있다.

◇뭘 겨냥하나=식사 자리엔 어떤 규칙과 원칙이 있을까. 첫째 정국(政局)의 주요 지점이면 어김없이 그 횟수가 늘어난다. 지난해 10월 열린우리당 창당을 전후해 당 지도부는 수시로 盧대통령과 식사를 같이했다. 잠시 뜸해졌던 오.만찬은 지난해 말부터 다시 늘고 있다. 총선을 4개월 남짓 남겨놓은 시점에서다.

둘째 현안에 대해 대통령 자신이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한다. 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할 말이 있어 부른거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대통령이 참석자들에게 특별히 보안 유지를 당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대통령과 식사를 한 인사는 "얼마 전 대통령의 식사 중 발언이 언론에 보도돼 파문이 생긴 직후였는데도 특별히 '나가서 말을 옮기지 말라'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결국 '밥 정치의 최종 목적은 중개 정치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있는 것도 이런 상황들 때문이다. 부담이 많은 직접화법의 정치보다 간접화법의 정치를 택한 것이다. 설화(舌禍)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열린우리당 핵심 인사는 "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지만 대통령은 직접 나설 수 없고, 돌아가는 상황은 답답하고 盧대통령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좋은 방법 아니겠느냐"며 "대통령의 식사 중 발언이 전달돼 파문이 일어도 사석 발언으로 피해갈 수 있는 이점도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밥 먹은 것 같지 않아"=지난해 12월 14일.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7명은 약속 시간보다 15분 늦게 허겁지겁 청와대 만찬장에 들어섰다.

차가 막혀 지각한 것이다. T셔츠 차림의 盧대통령이 들어섰다. "군대만 좋아진 줄 알았는데 청와대도 많이 좋아졌지요. 막 늦게 오고도 괜찮고요." 이 농담 때문에 굳었던 분위기는 확 풀어졌다. 본론을 꺼내기 전엔 주로 일상적 얘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임신한 며느리의 배가 너무 불러 겁이 날 정도예요"(지난해 12월 20일.김근태 원내대표와의 식사)라며 집안 얘기도 꺼내고, "예전에 내가 술이 많이 취하면 아내가 술집으로 데리러 오기도 했다"(지난 4일.김원웅 의원 부부 동반)는 농담도 한다.

盧대통령은 얘기는 많이 하지만 식사는 남기지 않는 스타일이다. 한 참석 의원은 "盧대통령은 말이 많은 편이었지만 밥 먹는 속도는 주변과 잘 맞추더라"고 소개했다. 부부 동반 식사를 했던 김원웅 의원 부인 진옥선씨도 "대통령께서 밥도 드셔가며 이야기도 잘하더라"고 말했다. 김근태 대표의 부인 인재근씨는 "김치찌개와 나물 등이 반찬으로 나왔는데 대통령은 전혀 가리는 반찬이 없었고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울 만큼 식성이 좋았다"고 전했다.

한편 盧대통령은 지난 연말에는 부부동반으로 민주당 김기재 의원과도 식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金의원은 "지난 대선 때 부산 선대본부장을 지낸 데 대한 盧대통령의 감사표시로 식사를 했다"고 말했다.

신용호.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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