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조건 없이 만나겠나" 질문 놓고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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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면 집권 첫 해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불량 국가로 지정한) 이란.시리아.베네수엘라.쿠바.북한의 지도자와 조건 없이 만날 용의가 있느냐."

CNN 방송과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의 공동 주관으로 23일 열린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 토론회에선 이런 질문이 나왔다. 이때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나는 취임 첫 해에 그런 나라의 지도자들과 만나겠다고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의 의도를 알기 전에 그런 회담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상반된 발언을 놓고 양측은 24일 공방전을 벌였다. 힐러리 진영은 오바마의 답변을 "순진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연방 상원의원 경력이 2년6개월밖에 안 되는 오바마를 '외교를 모르는 풋내기'로 낙인찍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다.

힐러리는 이날 아이오와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생각은 무책임하고 단순하다"고 비난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집권 시절 국무장관을 지냈고, 현재 힐러리 진영에서 외교 분야를 맡고 있는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그런 회담은 단계적 과정을 밟아야 하며, 시작 단계에선 하위급 접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힐러리의 답변이 모든 (외교)절차를 이해한, 훨씬 세련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오바마는 직접 "힐러리의 태도는 (불량 국가와 대화를 거부해 온) 부시 행정부의 그것과 흡사하다"고 반격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출신으로 오바마를 돕고 있는 앤서니 레이크는 "위대한 나라와 그 대통령은 어느 누구와도 협상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리처드 닉슨이 중국과, 로널드 레이건이 소련과 협상했듯 오바마도 그렇게 할 것임을 올바르게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바마의 보좌관인 데이비드 액셀로드는 "오바마가 아무런 외교적 준비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그런 나라 지도자들과 만난다는 건 아니다"라며 "미국 국민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 방식이 계속되는 걸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중 지지율 3위인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도 오바마의 발언을 공격했다. 에드워즈는 "나 역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이란 대통령)나 김정일, 우고 차베스(베네수엘라 대통령)를 만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기 어렵다"며 "그 경우 그들의 선전 수단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계열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토머스 만 연구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답변이 그에게 치명상을 주는 건 아니지만 경험 부족을 노출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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