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인사 개입여부 미제로/끝내 전모 못캐낸 경원학원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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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92년이후 새재단 비리 못밝혀내/교수채용·편입학 부정도 손못대/경찰 “입시서류 파기돼 수사 불가능”
경원학원 입시부정사건 수사는 22일 검찰에 사건일체가 송치되면서 13일만에 일단 마무리된다.
이번 사건수사는 구속자수가 21일 현재 27명에 이르고 13명이 불구속입건되는 등 외형적으로는 상당한 실적을 올리고 있으나 구체적인 수사내용을 살펴보면 당초의 기대에 크게 미흡한 「태산명동서일필」의 결과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지난 10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할 당시 경찰수사 수뇌부가 밝힌 수사목표와 비교해 봐도 그렇고 수사단서가 됐던 제보내용에 비추어봐도 마찬가지다.
당초 경찰은 경원학원의 입시부정이 88년부터 재단차원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져 91∼93년 사이에만 6백30여명이 부정합격했고 이에 따른 재단측 수입은 4백억원대라는 제보내용을 일단 「목표」로 설정했었다.
비록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수사였지만 경찰은 사학비리 척결과 함께 최근의 사정 물결을 타고 이 사건에 연루된 고위공직자·국회의원·군장성 등 사회지도층 인사를 밝혀낸다는 것이 수사착수의 명분이었다.
그러나 현재 경찰이 밝혀낸 부정합격의 규모는 91년도 전문대의 90명,92년도의 7명,93년도의 1명 등 모두 98명. 이 과정에서 재단에 유입된 금액은 25억원 정도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던 민자당 최형우의원의 부인 원영일씨(52)는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무혐의 처리될 전망이다.
즉 수사결과로만 볼때 경원학원의 입시부정은 91∼93년도 전문대에 국한됐고 사회지도층인사는 거의 이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으며 특히 재단이 바뀐 92년 이후에는 재단차원의 부정은 없었다는 것이 된다.
또 경원전문대 조종구교학처장(56·구속)의 진술을 통해 나타난 안경근서울강남경찰서장의 부정합격 청탁부분도 수험생부모의 잠적으로 수사가 이뤄지지 못했다.
물론 경찰이 이 정도의 수준에서 수사를 마무리하지 않을 수 없는 나름의 이유는 있다.
입시관련 서류가 대부분 파기돼 수사의 기초자료가 전무한 상태인데다 부정입시를 총지휘했던 김동석총장이 이미 사망했고 김용진 전 재단이사장(54)도 미국으로 출국,사건의 핵심인물이 국내에 없는 점도 수사상 큰 애로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이번 수사에 기대를 하고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 경찰 수뇌부가 수사초기 명확하게 밝혔듯이 수십명의 사회지도층 인사의 개입여부와 전문대가 아닌 경원대의 입시부정 수법과 규모였다.
그런데도 수사마감 하루를 앞둔 21일 현재 경찰은 『사회지도층 인사가 대규모로 연루된 입시는 88학년도로 이미 입시관계서류가 모두 파기되는 등 수사단서가 될 증거가 일절 없어 수사가 불가능하다』며 이 부분에 대한 수사는 아예 손도 대지않고 제쳐놓은 상태다.
경찰조직의 최고수준 수사력을 자랑하는 경찰청 수사2과가 이번 수사에서 새로운 수사기법을 만들어 내고 이에 따른 학교측의 부정합격생 양산방법을 밝혀낸 것은 일단 개가로 평가할만 하다.
관계자들의 완강한 혐의부인과 증거가 일절 없는 상황에서 37만여장의 수험생 답안지(OMR카드)에 찍힌 감독관 직인을 대조하는 방법으로 1백명 가까운 부정합격생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 수사에서 ▲사회지도층인사의 연루여부 ▲재단이 바뀐 92년도 이후의 재단차원 입시부정 ▲교수채용비리와 부정 ▲편입학부정 부분 등이 미제로 남게 됐음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되더라도 이같은 미흡한 부분의 지속적인 수사와 함께 이번 사건에 연루됐다 수사가 시작되자 자취를 감춘 40여명의 학부모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등 명쾌한 사법처리에 수사력을 모아야 할 것이다.<김우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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