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태풍 숨죽인 「연희동」/전­노 두 전 대통령 요즘 뭘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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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화요골프」 끊고 손님도 제한 전/친인척 내사설속 처신 조심 노
15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과 측근 10여명은 북한산에 올랐다. 1주일에 한번씩하는 목요산행이었다. 전씨 일행은 정릉쪽 입구로 올라가 제5야영장에서 도시락 점심을 든후 평창동쪽으로 내려왔다.
전 전 대통령이 산을 떠난지 2시간후 이번엔 노태우 전 대통령 일행이 똑같이 정릉쪽 등산로에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의 동서 금진호의원의 얼굴도 보였다. 노씨팀은 형제봉아래 산길을 돌아 국민대쪽으로 내려왔다.
두 전직대통령은 몇주일째 이처럼 만날듯말듯 아슬아슬한(?) 산행을 계속해 오고 있다. 산행코스를 보면 「우연한 화해상봉」을 바라는 것 같기도 하지만 양쪽의 측근들은 『저쪽의 코스를 미리 알아보는 일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두시간차로 산행
두 전 대통령에게 등산은 요즘 거의 유일한 외부활동이다. 그밖의 시간은 두사람 다 거사처럼 연희동집안에서 보내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김영삼정부 출범이후 그 좋아하던 골프를 거의 치지 않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임기말에 그토록 몰입했던 골프를 퇴임후 한번도 한적이 없다. 두 사람은 왜 이토록 갑갑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
『지금 연희동의 두집 담장밖에는 YS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태풍속에 어떻게 골프를 치나. 새 세력이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을땐 물러간 세력은 잊혀진듯이 조용히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두사람 다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양쪽 사정에 밝은 한 정계인사의 해석이다.
○상해방문도 재고
노 전 대통령은 퇴임이후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처신에 조심하고 있다. 가끔 등산이나 하고 정 답답하면 동네 슈퍼마킷이나 실내 테니스장을 찾는게 고작이다. 고향도 퇴임 40여일후인 지난 10일에서야 다녀왔다.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려는 노력이 역력하다.
5년전 청와대를 물러난 전 전 대통령과는 너무 차이가 난다. 전 전 대통령은 퇴임 한달후 국가원로자문회의의장 자격으로 수행원을 15명이나 거느리고 미국을 방문했었다. 전 전 대통령은 동생 전경환씨에 대한 5공비리 족쇄가 조여오는데도 미국에서 레이건대통령(당시) 및 닉슨·포드 전 대통령과 만나는 여유를 보였다.
노 전 대통령도 마음만 먹으면 비슷한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는 전직 국가수반협의회(IAC)의 정회원으로서 오는 5월13∼16일 상해에서 열리는 11차 총회의 초청장을 받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측은 참석을 적극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혁태풍이 점점 더 몰아치자 이를 재고하고 있으며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재산공개회오리가 처음 다가왔을때 노 전 대통령쪽은 『우리도 공개준비가 다 되어 있다. 재임중 늘어난건 자동차 한대뿐』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십몇억원이란 재산을 공개해봐야 국민이 믿을 것 같지도 않고 자칫 의혹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고 판단,슬그머니 도로 집어넣어 버렸다.
더욱이 노 전 대통령은 친인척인 박철언·금진호·김복동의원이 구설에 오르고 자금관리책 이원조의원이 당국의 내사를 받는 지경에 이르자 내심 좌불안석일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노전 대통령은 어떤 측근에게 조차도 시국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고 특히 김영삼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만한 언행은 근처에조차 가지 않는다.
○시국관련 말조심
지난달 하순 한 측근은 노 전 대통령에게 『날씨도 따뜻해졌으니 골프도 한번 나가시죠』라고 운을 떼어봤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골프는 당분간 치지 않겠다』고 했다.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이 신문을 매우 꼼꼼히 읽는다』고 말했다.
김복동·금진호·박철언의원중 금 의원만 테니스·등산을 같이 하고 김·박 의원은 발길이 거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심복 김성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비리로 구속되자 『그 친구가 언제 그랬나』고 했을뿐이라는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와 올해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난해 그는 요란스럽게 「복권」을 과시했었다. 일행 40여명과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왔고 보란듯이 백담사를 다시 찾기도 했으며 두 아들을 3김에게 보내 인사하게 했다.
매주하는 「화요골프」는 요란했다. 5공 각료들은 물론 민자당의원과 대통령 재임중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그룹으로 불러 한꺼번에 4∼5팀을 끌고 나갔다. 그러나 김 대통령 취임이후엔 골프는 안가고 등산만 한다.
전 전 대통령은 최근 1∼2주동안 면담객도 적절히 사절하고 있다. 측근들은 『전 전 대통령의 감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 관측통들은 『전 전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처럼 담장밖의 바람을 의식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무실개설 보류
전 전 대통령측은 금년초 시내에 사무실을 마련할 계획도 보류하고 있다.
지난 7일 전 전 대통령은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받고 감회에 젖은 적이 있다. 전 전 대통령은 그에 대해 동병상련의 애틋한 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퇴임직후 미국에 갔을때 닉슨씨는 자신의 워터게이트 수난을 염두에 두고 『정권이 바뀌면 전 권력자는 시련을 겪게 마련』이라고 했다고 한다.
5년만에 다시 만난 두사람은 정원에서 손을 꼭 쥐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닉슨씨는 기자들에게 전 전 대통령을 『스트롱 맨』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 「스트롱 맨」도 문민개혁이라는 역사의 바람앞에 숨을 죽이고 있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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