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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천<문예진흥원 국제사업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아빠, 왔어.』
『들어오라고 해.』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일곱 살 난 아들녀석이 목욕탕에서 소리를 지른다.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 같아 언짢아하며 『애한테 오냐오냐 하니까 이 모양이잖아』하며 아내에게 곱지 못한 눈길을 보냈다.
아들 생일이 지난 며칠 후 직장일이 바빠 늦게서야 집에 들어간 날이었다.
아들녀석 누리는 아빠 선물을 기다렸다 못 받은 것이 서운한지 그날 이후 줄곧 나만 보면 성화를 부려댔다.
어느날 토요일이라 일찍 들어갔더니 기다렸다는 듯 보채고 나논다.
『여보, 주말인데 오랜만에 아버지 노릇 좀 해보세요.』아내와 아들의 등쌀에 뭐든 사주어야 할 판이다.
『그래 , 뭐 사줄까 ?』
『게임기』『그건 안돼.』
게임기의 부작용에 대한 신문기사를 최근 본 적이 있는 나는 순간적으로 완강하게 거부했다. 누리가 거실 한쪽 구석에서 훌쩍훌쩍 울며 사달라고 떼를 쓰고 아내도 아이편을 든다.
2대1로 열세이니 어쩔 수 없어 하루 30분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게임기를 사주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간 게임에 정신이 팔려 부자지간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 후 주말에 젊은 아버지들이 가나안농군학교를 방문, 1박2일을 보내는 프로그램이 있어 아들과 함께 참여한 뒤 돌아오는 차 속에서다.
『아빠, 큰 공 하나 사줘.』『왜 ?』
『준수형, 연호형은 공을 세게 잘 던지는데 나는 처음 만져서 잘 못던졌단말야.』
『공 가지고 노는 것도 재미있었니?』
『그럼. 다음에도 형들 노는데 데려다 줘. 나도 이제부터 아빠 약속은 꼭 지킬게.』 다음날 큰 배구공을 사주었다.
누리가 놀이터에서 마냥 즐겁게 뛰어 노는 모습을 창을 통해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아내가 옆으로 다가온다.
『웬일이죠? 혼자 잘 나가지도 않던 아이인데 주말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빙그레 웃기만 하자
『당신, 마음을 주었군요. 결혼 전 내게 하 듯….』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손을 꼭 쥐며 하늘을 바라본다.
오늘따라 서울하늘이 무척 맑고 푸르러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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