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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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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김정일은 73∼74년간 당내유일지도체계를 확립하면서 모든 기구를 「조직지도부」중심으로 개편했다.
조직지도부 기능을 강화해 당생활지도·간부인사·당내 검열권한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일사불란한 체계를 세웠던 것이다. 그는 당원들에게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원칙」의 생활화를 요구하는 한편 자신이 내건 정책·구호(생산도 학습도 생활도 항일유격대식으로!)가 제대로 집행되는지 확인하는 체계를 만들어갔다.
유일지도체계 확립과 관련된 김정일의 당활동에서 74년은 중요한 해였다.

<10대원칙 생활화>
일본의 북한문제전문가 스즈키 마사유키교수(성학원대)가 노동당출판사에서 출간한 외부비공개 김정일문헌집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전5권)를 입수해 김정일의 74년 당활동을 검토한 연구가 눈길을 끈다(『북조선:사회주의와 전통의 공명』88∼89쪽). 그에 따르면 74년 노동당에선 이런 일들이 있었다.
▲김일성이 74년 1월31일 비서국회의, 2월 5기8차 중앙위 전원회의와 그뒤의 정치위원회 및 비서국회의에서 조직지도부사업 관련교시를 내렸다.
▲당중앙은 이를 구체화해 재편했다. 그 결과 당기관에 대한 당의 지시는 모두 김정일을 통하게 됐다.
김정일은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활동가에게 「당중앙위로부터 하부 당조직으로 나가는 지도서는 반드시 수령과 우리(조직지도부)의 비준을 받은 후 나가도록 해야 한다」는 지시와 「당중앙위의 각 부서가 파견하는 지도소조도 김일성과 김정일이 직접 관장한다」는 지시를 내렸다. 상부에서 말단까지 당조직 움직임을 자신에게 집중시킨 것이다.
▲각급 당위원회의 보고도 김정일에게 집중시켰다.
그는 74년6월 『해당단위 사업에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를 모두 당중앙위에 집중하고 중앙위는 그것을 상급 당조직에 보고하고 최종적으로는 중앙위조직지도부에 집중하도록 하는 체계를 세웠다』고 밝혔다. 조직지도부를 장악하면 당원 개개인의 신상자료와 정책문제, 그리고 유일사상체계에 반대하는 움직임까지 파악할수 있게 한 것이다.
▲김일성교시에 따라 조직지도부내 부서의 직능도 개편됐다. 조직지도부 개편에 따라 중앙기관지도과·지방지도과·간부과·통보과·검열과등을 두게 됐다. 이같은 스즈키교수의 설명은 전 북한고위관리의 설명과 거의 일치한다.

<당원들 성향 조사>
노동당 중앙에서 일한 전 북한고위관리는 『당의 핵심참모부서인 조직지도부가 당·정·군등 전반적 간부문제(인사권)를 장악할 수 있도록 조직지도부 기구를 개편하고 간부사업체계를 세우는데 힘을 집중시켰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한다.
당 간부부아래 부서별·기관별로 분산취급되던 간부사업을 조직지도부가 직접 총괄토록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지도부 간부과가 대폭 확충됐다.
간부과는 제1∼8과로 나누어졌다. 1∼2과는 당간부, 3과는 군대간부, 4과는 사법·검찰·안전·국가보위간부, 5과는 정권기관간부, 6과는 경제부문간부, 7과는 교육·과학·문화·예술간부, 8과는 언론·출판·보도간부등을 각각 맡도록 세분화됐다고 한다. 이는 조직사상비서로 조직지도부장·선전선동부장을 겸하던 김정일이 모든 인사권을 장악하게됐음을 뜻한다.
또 「간부사업지도서」라는 것을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모든 간부의 선발·임명기준과 절차, 간부의 승진·이동·해임, 간부교육의 절차·방법등이 상세히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조직지도부가 관장하면서 규정에 의거해 간부사업을 집행하는 체계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당·군·정·경제·과학·교육부문등 가릴 것없이 모든 부문·단위의 사업을 지도· 검열하는 「지도검열사업체계」도 이 무렵 세웠다고 한다. 이것도 당 조직지도부에 집중됐다.「지도검열사업지도서」와 요강이 만들어졌고 조직지도부에 중앙검열 1∼2과와 지방검열 1∼5과가 신설됐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김정일이 관장하던 조직지도부는 비대한 조직으로 변해갔다.
전 북한고위관리에 따르면 김정일은 당내에 유일지도체계가 확립되자 곧이어 74년 후반부터 75년 중반까지 군에 대한유일지도체계 확립에 돌입했다. 74년 하반기 군내 당조직에 대한 일제 검열지도를 개시했다고 한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검열성원들을 인민군 당위원회, 총정치국, 각 군종·병종사령부 당위원회, 군단·사단·연대·대대당위원회와 중대세포에까지 파견했다는 얘기다. 검열기준은 유일사상체계와 유일지도체계를 군에서 제대로 따르는가, 김정일이 제시한 방침·구호가 제대로 접수되고 있는가였다. 2개월쯤의 검열총화로 군사정치간부 대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군부에 교두보마련>
68년 신설된 군정치위원제를 강화하는 조치도 동시에 취해졌다. 정치위원이 각 군종·병종사령부, 군단사령부, 사단사령부, 여단·독립연대까지 파견됐다. 군의 각급단위에 있던 정치부장과 달리 정치위원은 당중앙에 직속되어 당이 군을 통제하는 주요 창구가 됐다.
전 북한고위관리는 이 무렵부터 군내 명령과 군수물자이동등을 포함한 군사문제에 대한 결정권이 김정일에게 모아지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 뒤의 과정이 보여주듯 군부의 특수성 때문에 그가 일체의 무력을 지휘통솔하는 인민군 최고사령관·국방위원장이 되기까지는 2O여년 세월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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