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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즐거운천자문] 모두가 인정하는 ‘국민 연예인 작위’ 는 송해씨 정도 돼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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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방송사마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이 편성돼 있긴 하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 태반이다. 반성은 없고 아예 한 술 더 떠 자사 프로그램 홍보로 도배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제작자는 옴부즈맨이라는 말의 뜻을 알기나 하는지 궁금하다.

 우연히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지나가면서 그 영문표기가 ‘The Ombudsman of Korea’인 걸 보고 PD시절 기억 하나가 퍼뜩 스쳐갔다.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국민 여러분.” 개그맨 이경규의 전매특허가 된 이 말 때문에 1990년대 초 ‘국민’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일화다. 네티즌의 시점에서 보면 거의 선사시대 풍경에 해당할 것이다.

 연출자라고 밝힌 나에게 그 분은 국민이라는 말을 그렇게 함부로 사용해도 되느냐고 점잖게 물었다. 자신은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지도 않을뿐더러 국민이라는 호칭이 그렇게 함부로 쓰이는 게 영 못마땅하다는 게 얘기의 요지였다. 진행자에게 이 내용이 가감 없이 전해졌고 한동안 그의 인사말은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시청자 여러분’으로 바뀌었다. 자화자찬이지만 나름대로 아름다운 ‘국민고충처리’ 실천사례였다.

 조용필 팬클럽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한국엔 유난히 국민가수가 많다. 국민배우도 여럿이다. 국민여동생도 있다. 급기야 최근엔 국민언니까지 등장했다. 그때 전화하신 그 분은 작금의 이런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번 넌지시 물어보고 싶다.

 문득 방송 프로 가운데서 ‘국민’이라는 작위를 줄 만한 게 없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굳이 국민투표, 아니 여론조사까지 할 필요는 없다. 영광의 후보를 가리는 데 별다른 고충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일요일 한낮에 방송하는 ‘전국노래자랑’. 1980년 봄부터 28년째 논스톱으로 전국을 노래로 물들이는 중이다.

 놀랍게도 TV 음악프로그램 중 단연 시청률 1위다. 화려한 조명에 인기가수가 출연하는 쇼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5%를 넘지 않는데 이 ‘촌스러운’ 프로의 시청률은 요지부동 두 자리 숫자다. 그 비밀이 뭘까.

 확실한 건 시청자가 들러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당당히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대접받는다. 무대에서 점잔을 빼는 일은 아예 없다.

하기야 일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잡은 출연기회를 쓸데없이 무게 잡는 데 허비하는 건 어리석은 처신이다. 1절을 끝까지 부르는 경우가 드문데 그래선지 짧은 시간에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지역특산물을 들고 나오는 사람이 중간에 등장하는 것도 이 프로만의 특징이다.

 무대 한 모서리에는 올해 여든을 넘긴 키 작은 노신사가 있다. 전국의 산해진미를 다 섭취한 덕분인지 결단코 팔순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다. 송해. 스스로를 나팔꽃 인생이라고 노래하는 천진한 그야말로 대한민국 누이들의 영원한 오라버니다. 전국을 유람하며 서민들의 친구가 되기를 자처하는 일요일의 푸근한 남자. 국민프로의 국민사회자가 되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OBS 경인TV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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