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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지원 돈줄 쥔 「농촌경제 실력자」/농협단위조합장(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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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주민과 “동고동락”민원 줄이어/“말 많고 탈 많은 곳”… 직위악용 오명도
농협단위 조합장은 그야말로 그 지역의 실력자다. 읍·면지역의 경우 공인받는 서열은 면장·지서장 다음이다. 지역내 국민학교 운동회나 마을대항 체육대회라도 있을 경우 내빈석의 세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가 하면 단위조합장은 수시로 면장·지서장을 만나 함께 면정을 논의하는 명실상부한 지역기관장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여기에다 농협단협장은 나머지 2명의 기관장이 갖고있지 못하는 지역의 돈줄을 가지는 지역 금융기관의 장이다.
이 때문에 단협장은 영농자금 방출권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대부분이 농민인 조합원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가장 끗발있는 자리의 주인공으로 군림하기도 한다.
그러나 조합장은 지역주민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또 다른 일면도 가져야 한다. 이른바 「유능한 지역주민의 해결사」역할이 그것이다. 관혼상제가 있는곳마다 빠짐없이 참여해 경조의 뜻을 표시해야 하고 조합원의 어려움을 떠맡아 함께 풀어주어야 한다.
이같은 입장 때문에 단협조합장은 결혼식 주례도 하고 상가에 가 염습을 해주고 상여를 운반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조합원 자녀가 서울 등 대도시로 유학가면 전세방을 구해주고 돈이 필요한 조합원의 빚보증까지 서주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서도 단협조합장의 주요업무중 하나는 결혼식 주례서기. 오래전부터 그 지역에 살아온 사람들의 자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아 잘 모르는 경우라도 주례요청은 거절할 수 없는 자리다.
○주례요청 시달려
또 주례는 아니더라도 쏟아져 들어오는 결혼식 청첩장에 대해 가능한한 모두 성의를 표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남 나주군 다시단협장 장덕웅씨는 지난주말 이틀사이 무려 20건의 주민들 애경사에 참석했는데 장씨가 조합장 명의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은 매월 3백만원에 불과했다.
단협조합장이 주민들에게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것 가운데 하나는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돼 조합원 자신이나 그들의 자녀가 경찰서나 지서에 불려가 조사받거나 갇혔을때 이를 처리해주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조합원 자녀들이 취직을 못해 애태울때면 그들의 구직까지도 신경써야하고 문제청소년들의 선도 등 지역유지의 입장에서 발벗고 나서야 한다.
농협은 앞으로 현재 일선 단협중 자립능력이 떨어지는 조합들을 점진적으로 통폐합해 군단위를 기초조직으로 확대개편해 가는 방향으로 조직개편 중이다.
이것이 완성되면 직선제단협장은 사실상 지자제 단체장 선거가 실시될 경우의 군수와 맞먹는 힘을 갖게돼 위상이 앞으로는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직선제가 실시된 이후 조합장들은 사실상 매사가 선거운동과 연관된다고 할만큼 유권자들의 이해관계에 시달리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자신을 적극 지원해준 조합원이 농자금 등 각종 자금을 대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데리고 와 막무가내로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생떼를 쓸땐 이를 설득하기에 진땀을 빼기 일쑤다.
○영세한곳 통폐합
그런가 하면 근무시간이나 밤늦은 시간을 개의치 않고 불러내 「술사라,밥사라」고 해 빡빡한 예산으로 쪼들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조합장들은 나름대로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내 조합원들의 애경사를 챙기기에 바쁘다.
전북 고창군 심원면 심원단협장 김영래씨(56)는 90년부터 농민들의 생일축하 운동을 펴 설날과 추석 이틀을 제외하고는 간단한 선물을 챙겨들고 1년 내내 찾아다니고 있는데 어떤때는 논두렁·밭두렁까지 찾아가기도 한다. 이 바람에 김씨는 단협장 재선을 위해 일찍부터 표밭을 다진다는 오해를 사기도 했으나 조합원·비조합원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생일축하 운동을 본 주민들로부터 요즘은 진심을 인정받아 주민화합의 선봉이라는 칭찬을 듣는다.
그러나 농협단위조합장 자리는 항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다. 직선제가 실시되기 전엔 대의원 회의나 9인 소위원회 등을 통해 복수로 후보를 추천하면 군수의 동의를 얻어 군조합장이 임명하거나 농협중앙회장이 임명했기 때문에 치열한 로비로 인해 물의를 빚는 일이 잦았다.
이 로비는 가깝게는 시장·군수에서부터 멀리는 도지사·국회의원이 입김까지 동원됐고 심할 경우 중앙부처의 높은데까지 선을 댄다.
전북 완주군 모단협장을 지낸 L씨는 74년 2월 조합장에 선출됐다가 정치세력이 배후에 있다는 조합원들의 반발에 부닥쳐 5개월만에 물러나야만 했다.
직선제로 된 이후에는 위상이 다소 강화됐지만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 추문이 속출하기도 한다.
직선조합장은 자율성이 많이 주어지는 반면 선거운동이 끝난 후부터 낙선한 후보쪽에서 각종 자격·불법선거 시비를 계속 제기해 결과적으로 지역사회를 학연·금권·혈연·마을 등에 따라 사분오열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을 분열 부작용
강원도 인제군 모단협의 경우 88년 선거에서 K씨가 전직 직선조합장 C씨를 근소한 표차로 물리쳐 당선되자 C씨쪽 인사들을 대거 다른 조합으로 전출시켰는데 지난번 선거에선 C씨의 도움을 받은 조합직원이 당선돼 K씨 진영 인사들을 푸대접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북 완주군 모단협에서도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측이 당선자가 금품을 뿌리며 부정을 저질렀다고 검찰·청와대 등에 진정,지역여론이 분열되는 부작용을 빚기도 했다.
영농자금·농기계자금을 대출해주면 조합장이 3∼5%씩의 커미션을 공제하는 것이 관례라는 일부 오해를 받는 것도 특색이다.
지난 5월에는 신축조합건물 공사입찰을 둘러싸고 돈을 받은 경기도 화성군 남양단위 조합장 임모씨(48)와 전무 임모씨(39),경기도 안산시 군자농협조합장 정윤종씨(45),그리고 이들에게 돈을 준 업자 이형복씨 등 4명이 수원지검에 구속돼 두둑한 돈이 생기는 노른자위(대출 관련)가 아니냐는 부담스런 눈길을 받기도 했었다.<지방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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