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조선형사 홍윤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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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성기웅(33)씨. 그는 최근 대학로 영파워의 선두주자다. 지난해 그가 직접 쓰고 연출한 연극 ‘삼등병’은 군대를 배경으로 극적 긴장과 인간의 본성을 절묘하게 얽어 놓아, 작지만 탄탄한 작품으로 크게 호평받았다. 오는 10월엔 그가 각색하고 연출하는 ‘소설가 구보씨와 경성사람들’이란 작품이 ‘예술의전당 자유 젊은 연극 시리즈’란 타이틀과 함께 무대에 올려진다. 그리고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화제를 몰고 있는 작품 ‘조선형사 홍윤식’(사진)은 그가 대본을 쓴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홍윤식’은 유력 대선후보의 친인척 주민등록초본을 뗀 혐의로 요즘 신문의 1면을 장식하는 이름 아닌가. 실력만큼 운도 따른다고 봐야 할까.
 
제목부터 눈길을 끄는 ‘조선형사 홍윤식’은 대충의 얼개만 들어도 쑥 빨려들어갈 만큼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배경은 1930년대 경성 죽첨정(지금의 충정로). 아기의 머리가 잘린 채 발견되는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일본 경찰은 경성제국대 의학부 법의학 분실의 도움을 받는 등 당시로선 꽤 과학적인 수사로 사건을 파헤쳐 간다. 그 중심에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조선인 형사 홍윤식이 있다. 홍 형사는 꼼꼼하고 치밀한, 그리고 때론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동원, 아직도 전근대적인 미풍양속이 만연한 한국 사회를 풍자해가며 사건의 핵심을 향해 달려간다.

겉은 ‘과학수사대 CSI’처럼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 작품의 실제 미덕은 ‘말의 향연’이다. ‘호옥 지끔부텀 샤알록 호움즈의 이야기두 아니 부러울…”이라며 화자로 등장하는 경찰서 말단직원 서말희의 30년대 말투는 생경하지만 꼬물꼬물 곱씹는 맛이 있다. 작품에서 일본 수사반장과 한국인 용의자들은 서로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끔 설정해 놓고 있다. 즉 경성사투리는 한국어, 현재의 서울말은 일본어인 셈이다. 그래서 관객은 뻔히 알아듣는 얘기를 일본 반장은 계속 해석해 달라며 보챈다. 서늘한 살인 사건은 언어의 유희 속에서 짐칫 시치미를 뗀 채 우스운 꼴로 전락해 가곤 한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 느닷없이 나타난 ‘도깨비’ 소동에서 홍윤식이 사건의 실마리를 잃어가는 것처럼 작품 역시 길을 놓치고 만다. 불확실과 모호함으로 작품을 슬그머니 마무리짓는 건 아직 무언가가 내면에서 무르익지 못했다는 것 아닐까. 극의 긴박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자신과 대면하는 작가 본래의 치열함이 화려한 겉치장보단 훨씬 아름답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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