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로봇 같은 부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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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4면

적당한 전희, 10분간의 쉼 없는 피스톤 운동, 왠지 발기력이 떨어지거나 빨리 사정할 것 같아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위기는 자동 조절되고, 매번 아내와 동시에 오르가슴을 느끼면서 마무리할 수 있다면….

누구나 이런 꿈을 꿀 수 있겠지만 21세기 첨단시대에 한국의 부부 중에는 너무나 기계적인 성행위와 비과학적인 믿음에 빠진 경우가 많다. 필자가 최근 만난 K씨 부부도 그러한데, 그들은 성행위를 할 때 자꾸 성기에 힘을 주는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었다.

“엉덩이에 힘을 빼면 발기가 자꾸 죽어버릴 것 같아 겁나서 말이죠.”

발기력이 떨어진 K씨는 이를 만회하겠다고 자꾸 성기와 엉덩이에 힘을 준다. 순간적으로 힘을 줘서 발기를 유지하겠다는 요량인데 이는 틀린 얘기다. 이런 노력은 발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악영향을 준다. 성반응은 자율신경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이를 제어하려고 하면 역효과만 낸다. 쉬운 예로 몸의 상태에 따라 저절로 속도를 조절하며 뛰는 심장을 10분 동안 멈출 수 있을까? 또한 내 손에 분비되는 땀의 양을 제어할 수 있을까?

발기나 사정을 조절하려고 억지로 몸에 힘을 주는 것보다 온몸에 긴장을 풀고 호흡을 조절하여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것이 성기능에는 훨씬 효과적이다. 이는 여성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남녀의 성반응은 기본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K씨의 아내도 이상한 습관을 갖고 있었다.

“어디서 저보고 성행위를 할 때 자꾸 질을 조이라고 하더라고요. 남편도 좀 조여주면 안 되느냐고 하는데….”

K씨 아내처럼 성행위 중에 질을 의도적으로 조이라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는 여성이 꽤 있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비과학적인 생각이다.

여성의 경우 흥분하면 질 근육이 탄력을 받아 저절로 긴장되고 조여지는 것인데 억지로 힘을 주면 자연스러운 성 흥분 반응이 깨진다. 성 건강에 좋다는 케겔운동(질·항문 주위의 근육을 조였다 풀어줬다 하는 운동)도 평소에 하라는 얘기지, 실제 성행위 중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외면한 채 성행위 중에 본인이나 남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질 근육을 조이는 것은 그릇된 방식에 불과하다.

발기력이나 질의 탄력성이 떨어지면 치료를 받아야지 억지로 성반응을 만들어봤자 백해무익하다. 훌륭한 성반응은 심신이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성적 흥분에 몰입하면 자연스럽게 생긴다. K씨 부부처럼 성적인 완벽주의를 추구하며 억지로 성반응을 조절하려는 사람에게 필자는 꼭 이렇게 말한다.

“제발 이제 그만 내버려 두세요!”

처음엔 K씨 부부는 필자의 조언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힘을 빼면 성반응이 더 떨어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긴장을 풀고 전신 근육을 이완시켜 자율신경계가 안정되자 발기나 쾌감은 훨씬 나아졌다. 부부가 서로의 성반응을 잘 이끌어낼 줄 알고 성생활이 개선되자 K씨 부부는 필자에게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에구, 저희 부부가 과거엔 로봇 같았더군요!”

강동우·백혜경은 서울대 의대 출신 전문의(醫) 부부. 미 킨제이 성 연구소와 보스턴ㆍ하버드 의대에서 정신과·비뇨기과·산부인과 등 성(性) 관련 분야를 두루 연수, 통합적인 성의학 클리닉ㆍ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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