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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예스」와 「노」(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지난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미국과 러시아 정상회담에서는 뜻밖의 해프닝 한건이 벌여졌다. 그것은 클린턴 미대통령이 옐친 러시아대통령에게 슬쩍 적어준 메모쪽지 때문이었다. 그 메모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일본인의 「예스」는 종종 「노」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쪽지가 우연히 회담장에서 발견돼 밴쿠버 지방TV방송에 보도되자 일본 언론들이 「얼씨구나」하고 모두 큰 가십으로 다루었다. 미국측이 당황한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백악관 대변인은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인의 예의범절에 대해 약간의 주석을 단것 뿐』이라는 궁색한 변명과 함께 공식사과함으로써 사태는 일단 진화된 것같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대통령이 일본인은 이처럼 「두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마음깊이 생각하고 있다면 단순한 해프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바로 그런 속마음을 일본인들은 「혼네(본음)」라고 하며,명분뿐인 「다테마에(건전)」와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이 「예스」와 「노」를 딱 부러지게 쓰지 않고 모호하게 여운을 남기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무슨 협상이나 상담에서 그들은 「검토해 보겠다」「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많이 쓰는데,이 말이 「점잖은 거절」이라는 것을 알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가게문을 닫았을때도 「준비중」이란 팻말을 단다. 여행객이 그 팻말을 보고 「조금 기다리면 준비를 끝내고 문을 열겠지」하고 기다리다간 냥패를 보기 십상이다. 그것은 「영업 끝」이란 뜻이다. 고장난 시계에도 「조정중」이라 써 붙이지만 「수리를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고장났다」는 뜻이다.
이같은 일본인의 언어습관은 군웅이 할거하던 전국시대와 강호 막부시대를 살아오는 동안 「사무라이」의 성미 급한 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될수록 간결하면서도 함축성 있는 모호한 말을 써야 했던 탓이다.
일본인은 대화중 「노」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리고 「예스」라는 말은 「당신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는 하지 않지만 듣고는 있다」는 뜻쯤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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