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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개그맨’이 그리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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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15면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 400회 특집에서 가장 반가웠던 건 정형돈이었다. 온몸에 비닐 랩을 칭칭 감고 나와 ‘포장육’을 재현한 단순한 개그가 그렇게 웃길 줄 몰랐다. 더 반가웠던 건 한껏 데시벨을 높인 목소리였다. 건방진 톤으로 “선생니~임 갤러리 정이에요”를 외치는 그 목소리는 ‘무한도전’에서 “진짜 떨린다 떨려”를 반복하던 기죽은 톤이 아니었다.

이윤정의 TV 뒤집기

사실 ‘개콘’ 시절 정형돈을 생각한다면 그가 요새 ‘무한도전’에서 주장하는 “나는 웃기는 거 빼놓곤 다 잘해”라는 말은 틀렸다. 그는 ‘개콘’에서 웃기기로 치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던 엘리트였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개그는 몸을 이용한 개그와 음악을 활용한 개그인데, 정형돈은 두 가지 다 가능한 사람이었다. ‘갤러리 정’이 육체파 개그라면, 400회 특집 시청자 설문에서 역대 1위에 꼽힌 ‘도레미 트리오’는 탁월한 음악 개그였다. 뚱뚱한 배, 단발머리에 탁한 목소리가 뿜어져 나오는 그의 신체조건은 웃겼지만 혐오감이 들지 않아서 적당했고, 시니컬하면서도 건방진 캐릭터와 연기도 어울렸다. ‘무한도전’에서 멤버들이 목숨 거는 ‘몸 개그’ 분야에 그는 훌륭한 자질과 연기력을 겸비한 재자(才子)였다.

그런데 MC가 되면서 ‘건방진 뚱보’ 캐릭터는 자리를 못 잡았고 결국 요즘은 ‘어색한 뚱보’ ‘웃기지 못하는 뚱보’로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인기는 얻었지만 웃기지 않는 개그맨의 컨셉트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봐도 그가 MC보다는 정통 개그를 계속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개콘’ 시절 팬이었던 유세윤의 버라이어티 쇼에서의 모습은 더 안타깝다. 그는 디테일한 연기력으로 캐릭터와 스토리의 단점을 극복할 능력을 지녔다. ‘복학생’이나 ‘사랑의 해결사’에서 그는 눈빛 하나 목소리 하나로 유별나지 않은 캐릭터를 완성도 높은 개그로 빚어냈다. 그런데 ‘무릎팍도사’에서 기세 좋게 밀어붙였던 ‘건방진 도사’의 캐릭터는 나날이 온순해져만 가고, ‘상상 플러스’에서는 기존 멤버들의 텃세에 밀려 아예 ‘자학하는’ 캐릭터로 전락하며 자리를 못 잡고 있다. 그 와중에 그가 ‘무릎팍도사’ 촬영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 신인 김효원은 한 달 만에 대박 스타가 돼버렸다.

사실 나는 개그계의 복잡한 현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정통 코미디나 콩트를 할 수 있는 프로도 거의 없고, 영화나 드라마 쪽으로 진출한 사례도 아직은 드물어 유재석·신동엽같이 MC계로 진출해 안정적인 미래를 확보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인 듯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처럼 MC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노력 때문에 개그맨으로서의 타고난 재능은 아깝게 소진되는 것 같다. 게다가 군대보다도 더 폐쇄적이고 서열을 따진다는 그 동네의 분위기상 아직은 어린 두 사람이 ‘건방진 컨셉트’를 들고 나와 선배 MC들과 편하게 손발을 맞추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들 개그의 순수한 팬으로서, 그들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몸 개그와 연기력으로 웃기는 무대를 포기해주지 말았으면 싶다. 개그맨들이 열심히 연기에만 몰두하다 보면 새로운 문이 열리는 그런 업계였으면 좋겠다. 웃길 줄 아는 재주, 그거 진짜 대단한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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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씨는 일간지 문화부 기자를 거쳐 영화 제작자로 활약한 문화통으로 문화를 꼭꼭 씹어 쉬운 글로 풀어내는 재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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