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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핵,발상을 바꿔야 한다(성병욱 칼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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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핵문제에 관한한 우리에겐 너무 카드가 없다. 북한이 정한 시기에,정한 싸움판에서 그들의 페이스대로 게임을 하고 있는 꼴이다.
북한은 핵개발카드를 손에 쥔 이래 수십년간 주장만 하고 얻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얻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논리나 핵개발계획은 수정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들을 달래고 타협이란 이름으로 양보를 거듭한건 우리쪽이다.
○북 핵카드로 주도권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것은 지난 85년 12월이었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핵안전협정체결의무를 6년이상 지키지 않고 미뤘다.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면서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한 버티기작전이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측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선언,남한내 핵부재선언,미국측의 간접확인,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등의 양보를 거듭했다.
비핵화선언에는 핵무기를 개발·보유·배치하지 않겠다는 내용외에 핵연료재처리시설 및 핵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내용까지 들어있다. 이 내용은 남북한간의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포함되었다.
우리측의 갖가지 양보를 얻어내고 핵안전협정에 서명한 북한은 IAEA의 핵사찰이 그들의 핵개발에 걸림돌이 되자 이제는 아예 NPT탈퇴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는 바로 북한이 결코 그 계획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달 12일에 탈퇴선언을 했으니 두달남짓이면 북한은 NPT에서 탈퇴하게 된다. 이 문제가 IAEA에 의해 유엔안보리로 넘겨진 만큼 외교적인 압력과 회유에 이어 유엔의 경제제재,최악의 경우 군사제재까지 갈지 모른다. 혹은 팀스피리트 중단,미·일과의 관계개선,IAEA사찰의 완화 등을 얻어내고 탈퇴를 포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NPT탈퇴를 강행하든 포기하든 핵무기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북한은 60년대말부터 30여년간 핵개발사업을 진행시켜 왔다. 우라늄광산 2개소 개발,2개의 농축우라늄공장·가스냉각 원자로 영변핵재처리공장 등을 건설해 왔다. 운반수단인 미사일생산능력도 상당히 쌓았다. 이미 북한은 원시적인 핵폭탄 2∼3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개발 결코 포기안해
남북한간 경제력 격차가 날로 심화되는 상황에서 북한으로선 남한과의 장기군비경쟁에는 승산이 없다. 그 경우 핵무기가 중요한 억지력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김일성­김정일체제에 있어 핵개발은 체제의 존립이 걸린 결코 후퇴할 수 없는 명제다. 겉으로 무슨 소리를 하든 핵보유를 향한 그들의 집념에는 흔들림이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강해지면 유화적인 제스처를 쓰면서 은폐노력을 강화할는지 모르나 핵개발을 포기하라고 보긴 어렵다.
북한이 기어코 핵무기를 갖겠다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쪽의 유화적인 조치나 양보로 북이 핵개발을 포기하리라고 기대해선 안된다. 설혹 NPT탈퇴를 포기하더라도 그것을 핵에 대한 포기로 봐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큰 위험부담을 안게될 북한에 대한 군사제재조치에 찬성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변핵시설에 대한 공격은 한반도전체와 그 주변에 대한 심각한 방사능오염을 초래한다. 북의 보복공격에 의한 피해도 막심할 것이다.
북의 현체제가 무너지지 않는한 결국 북은 핵무기를 갖게될 것이다. 북이 핵무기를 갖는다고 해서 우리도 당장 핵무기를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다.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상황은 우리의 「한반도 비핵화선언」이나 남북한간의 「비핵화공동선언」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북한이 휴지화한 것에 우리만 매여 있을 이유는 없다.
우리도 포기했던 핵주권을 회복하는 전기로 삼아야 한다. 우선 두개의 선언에 명시했던 핵연료 재처리시설 및 핵농축시설 불보유입장에서 자유스러워져야 한다. 이런 시설은 핵무기 생산에 전용될 수도 있지만 「사용한 핵연료」를 재사용하게 하는 경제적·환경적으로도 꼭 필요한 기술이다. 특히 우리같이 핵연료의 해외의존도가 큰 나라는 더욱 그렇다. 일본도 이미 두가지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플루토늄 비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 핵주권 회복해야
물론 우리가 두가지 시설을 보유하겠다고 하면 미국 등의 강한 압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핵무장을 위해 그런 시설을 가지려는 것이 아닌 이상 주권국가로서 그런 압력은 극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해 핵잠재력을 키워놓지 않으면 우리는 북한의 페이스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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