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맛쓴 「식목일 총동원령」 소동/이재학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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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식목일에 90만명의 공무원을 모두 동원,오후 6시까지 「산지녹화와 환경보호 및 국토가꾸기 행사」를 하겠다던 정부의 방침이 사실상 철회됐다.
공무원들이 나무 심을 장소와 묘목을 못구해 전전긍긍한다는 내용이 중앙일보에 보도되자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은 『각 부처의 형편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처하라』고 재지시한 것이다.
황인성총리는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것은 식목일 행사를 내실있게 하라는 얘기였지 꼭 전 공무원을 동원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초 식목일 공무원 동원의 발상은 청와대 행정 수석실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식목일을 다른 공휴일과는 차별화해 식목일답게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그런 의도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과 각 부처의 산하단체·기관 및 여타 공공기관까지 강제동원해 식목일을 내실화하겠다는 발상은 문민정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상이다.
자발적이지 않은 강제동원으로 식목일이 식목일 다워질지도 의문이다.
공직사회는 30여년만에 맞은 문민정부에 적지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공직사회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군사문화적 풍토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목일 동원계획을 전해들은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아직도 구태를 못벗었다고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국민이라면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모를리 없을텐데도 5급이상 3만5천여 공무원들에게 개혁에 동참해줄 것을 당부하는 친서를 보내는 낭비를 자초할때부터 무엇인가 초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중앙부처의 모 국장은 신한국을 창조하려면 정부조직개편과 그 운용방안의 개선방향을 고민해도 시간이 모자랄 형편인데 60년대 면서기나 할만한 발상으로 공무원들을 들볶아서야 되겠느냐고 핏대를 세웠다.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우리가 말렸는데 일이 이렇게 커지고 총리실만 책임을 뒤집어썼다.』 정작 청와대에 할 말을 못하다가 문제가 되자 마지 못해 끌려들어간 것뿐이라고 발뺌에만 급급한 총리실도 황 총리가 자처한 「제2의 개혁의 산실」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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