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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장성뇌물 '수훈' 강순덕 경위 전격 좌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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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석에서 노무현(盧武鉉)대통령에 관한 불미스러운 소문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경찰청 특수수사과 여성 간부가 전격 좌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경찰청은 지난해 12월 27일 특수수사과에서 근무하던 강순덕(姜順德.37)경위를 서울 남대문경찰서 경무과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특수수사과의 홍일점이었던 姜경위는 지난해 6월 군 발주사업 비리 수사 때 건설업자의 뇌물 리스트를 입수, 신택균 국방부 전 시설국장(예비역 소장) 등 전.현직 장성 6명을 구속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인물.

지난해 12월 17일 경찰청에 근무하는 여자 경찰관들이 민주당에 입당한 김강자(金康子) 전 총경을 환송하는 오찬 자리. 식사 뒤 姜경위를 비롯한 8명이 경찰청 구내 '포돌이 커피숍'에 들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姜경위는 별 생각없이 시중에 돌아다니는 대통령의 사생활 관련 소문을 화제에 올렸다. 물론 아무 신빙성 없는 '카더라'수준이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12월 24일 밤 姜경위가 말한 내용을 '나라사랑'이란 ID로 '현직 경찰관의 말(대통령이야기)'이라는 제목과 함께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올렸다.

발언 당사자로 姜경위의 실명을 밝힌 뒤 "현직 경찰관이 했다는 말을 우연한 기회에 듣게 됐다"며 盧대통령을 둘러싼 나쁜 소문 내용을 적었다.

경찰청 감찰팀은 다음날인 25일 문제의 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진상 파악에 나섰다.

인터넷 주소(IP) 추적 결과 이 글이 24일 오후 11시쯤 경기도 하남시의 한 PC방에서 작성됐다는 사실은 확인했으나 작성자의 신원은 미궁에 빠진 상태다.

대화에 참여했던 8명의 사진을 PC방 주인에게 보여줬으나 전부 아니라는 답변만 얻었다.

경찰청은 姜경위가 발언 내용을 시인함에 따라 27일 대기 발령을 내고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정식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姜경위 발령에 대해 "아무리 사적인 자리였다고 하더라도 청와대 하명수사를 맡는 특수수사과 직원이 대통령 사생활에 대한 음해성 루머를 근거없이 떠든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돼 내린 조치"라고 설명했다.

姜경위는 "사석에서 아무런 의도도 없이 시중에 떠도는 소문을 말했을 뿐인데 이렇게 파문이 클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에서조차 "잡담 수준을 가지고 좌천 발령까지 내린 것은 청와대 눈치를 너무 심하게 본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젠 말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됐냐"는 네티즌들의 항의글이 올라오고 있다.

민주당은 논평을 내고 "구시대의 권위주의적 발상"이라며 "총선을 앞두고 경찰 군기잡기에 나선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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